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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12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03 조회수365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3-21

그때에 13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1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7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일주일전 연중 제 18주일 복음으로 요한복음서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묵상하였고 오늘은 마태오 복음서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기적은 사전적인 의미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실현되는 경우일 것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하며 이런 굳건한 믿음이 바로 신앙입니다. 오늘 오병이어의 기적은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굳건한 나눔의 믿음이 있어야한다는 가르침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이기 때문에 능히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다른 어떤 일도 할 필요도 없이 오직 하느님께, 예수님께 우리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열심히 기도만하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으면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므로 더 열심히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의 얘기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기도에 대한 의미를 우리의 노력으로 바르게 이해하면 옳은 말이고, 기도를 비나이다! 로 생각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라고 권장하는 사람들과 이를 그대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개념이 없는 신앙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비나이다!하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5천배로 늘려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부족하지만 그나마 있는 것을 감사하며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 땅에 하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적은 것에 만족하고 부족한 것도 서로 나누며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오병이어의 기적보다 더 큰 하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하며 예수님께 청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십니다. 지금 상황이 실제 상황이라면 제자들의 말씀이 백번 옳은 말씀이고 예수님의 말씀은 황당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처럼 황당한 말씀을 하셨을까?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제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말씀 때문에 말씀을 묵상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며 그렇지 않고 우리의 생각과 똑같다면 말씀을 묵상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이 대화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목자가 어떻게 길 잃은 양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군중들을 길 잃은 양들로 생각하였습니다. 군중들을 길 잃은 양들로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옳을까요? 제자들의 생각이 옳을까요? 또 어제 주일 복음인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다하신 요한복음서의 말씀을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중들이 배가 고플 것 같아서 예수님이 군중들을 돌려보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군중을 길 잃은 양들로 새롭게 묵상하자 그동안 미처 그 의미를 생각하지 못한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한 말씀의 의미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양들이 배불리 먹기 위해서는 풀밭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가, 우리 사회가 풀밭에 자리를 잡으면 하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으면 하늘 나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나마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을 빼앗으려고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용산의 문제도 삶의 터전을 빼앗았기 때문이었으며, 쌍용의 문제도 삶의 터전을 빼앗았기 때문이었고, 미래 세대를 이끌어 가는 우리 어린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양심으로 교육 현장의 잘못을, 우리 사회의 잘못을 지적하였다고 하여 그 분들을 삶의 현장에서 내 쫒으려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우리 교회는 재개발 지역내의 성당을 빼앗기려고 하자 이제야 이런 사실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국가의 존립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라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생각은 국민의 생명은 기계의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조금만 다르면 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을 가차 없이 파면, 해임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무슨 짓을 못 하겠습니까?

오늘 복음은 물질의 풍요 없이도 얼마든지 하느님의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기에는 택도 없이 부족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도 감사하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내가 가진 것을 이웃에게 떼어 나누는 나눔의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우리 모두가 사랑과 자비의 정신으로 살아 간다면 이 땅이 바로 하늘 나라가 될 수 있음을 묵상하였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오병이어 기적의 비결을 알려주셨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이 말씀을 우리 모두가 실천할 때에
오천 명이 아니라 오천만 명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기적을 우리는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내 것은 움켜지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탐하며 살고 있기에
저희 모두는 목자 없는 길 잃은 양들이 되어
늑대들을 두려워하며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이런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늑대들을 물리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을 보내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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