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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삶과 거룩함/성숙한 그리스도인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05 조회수506 추천수2 반대(0) 신고
 
 
 
성숙한 그리스도인  

 
너무 왜곡된 나머지 현실적으로 거짓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교회와 하느님!
 
그리스도 안에서 삶에 대한 견해들을 억지로 받아들이려다
 
 신앙마저 잃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이 같은 비현실적인 견해를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정신에 관한 불완전하고 부족한 개념은
 
우리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신앙을 더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잃게 만든다.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억지나 자책, 이류(二流)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을 맞추는 잘못된 노력이 아니라,

진정한 주제를 명백하게 가려내고 진실한 견해를 다시 세우는 것이다.


우리의 이상은 가장 철저한 시험을 거쳐야 한다.
 
우리는 이 시험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거룩함과(유치함이 빚어 내는 허상을 두려움 없이 벗어 던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함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시정하고 새롭게 해야 할 뿐 아니라,

일생 동안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과
 
부대끼며 맞서 나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그리스도 인으로 살아가는 삶 속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까지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폐단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사회'라는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부유하고 안전한 현대 유럽과 미국 사회는
 
확실히 순수한 그리스도교적 사회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전통의 흔적에 매달려,

자신들이 아직 그리스도교적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19세기와 20세기의 실용주의와 세속주의 정신은
 
그리스도인들의 생각과 정신의 깊은 곳까지 침투하였다.

한편 프랑스 혁명과 그 영향에 격렬하게 대항하던 19세기의 교회가 얻은 것은

경직된 사고와 새로운 발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은 그리스도인들의 삶 안에 많은 갈등과
 
명백한 모순을 배태(胚胎)하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교회는 그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측면에서 폐단과 양심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조만간 다른 사람에게서든 자신에게서든

그리스도인들의 단점들과 맞부딪치게 되는 것은 정상적이며 필연적이다.

교회의 삶과 활동은 언제 어디서나 이상적인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교회에서 신앙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부정직하고 신실치 못한 자세이다.

역사가 그 반대의 사실을 증명한다.

불행하게도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하느님과 진리의 이름을 내건 채, 은밀한 방법으로

편견과 타성과 정신적 마비 상태에 머물러 있다.

거룩함 대신 심각한 도덕적 무질서와 불의가 기세를 떨치고 있다.

분명 교회가 스스로 오류를 가르치거나 불의를 조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이 교회의 가르침과 교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용하여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많은 오류와 부정직과 불의의 요소를 양산한다.

또한 교회 가르침의 진정한 의미를 무시해 버리는 습성에 빠져
 
영적인 영역에서든 사회적 영역에서든

그 안에서 정의와 진리를 수호해야 할 자신들의
 
마땅한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

진리와 하느님 교회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진지하고 겸손한 관심을 갖고 이러한 문제들과

대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오류를 시정하는 일에 협조하는 법을 배워야 하되,

경솔하고 반항적인 열성에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
 
교만함은 절대 은총의 징표가 될 수 없다.

11세기 성 베드로 다미아노는 교회 안에 만연된 악습에 격분한 수도자들에게

"거룩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먼저 하느님 앞에서 거룩해야 하고,

약점을 지닌 형제들 앞에서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라고 말했다.

그 성인은 전체 그리스도인들에게 임의적이며 일반적으로
 
가해지는 엄중한 처벌에 반대하였고

무력을 이용한 종교 개혁이 성공하리라고 믿지 않았다.

그리스도교 정신은 사랑과 겸손과 봉사의 정신이지
 
전제주의와 권력을 방어하기 위한 폭력의 정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단체 심지어 교회 내에도 악습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정직함과 겸손과 사랑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것을 숨기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 각자는 한 개인으로서 이해하기 힘든 광대한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그것을 자신들의 내적인 삶을 위한 좋은 목적으로,
 
자신의 신앙과 순종의 정신,

교회에 대한 초자연적인 사랑을 순수하게
 
 단련시킬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여 이용할 수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문제를 직접 바라볼 능력조차 없다.

그들은 그것을 결코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자기 가슴을 쥐어뜯는 번민을 피할 수는 없다.

그들은 그 번민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모를 수 있으나, 번민은 계속된다.

한편 또 다른 이들은 그들이 보고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심각한 수치가 된다.

그들은 그 상황에 대항하고, 교회를 저주하며,
 
심지어 거기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그리스도적 소명의 참된 의미에 가까이 다가섰으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요구되는 희생을 치러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다.

그 희생이란 곧 자신과 다른 이들, 그
 
리고 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불완전함과 부족함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불완전함에 관한 진실과 마주하여
교회가 단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해주기 위해,

평화롭고 안전한 안식처를 제공하기 위해,
 
우리를 피동적으로 성화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요점은 이렇습니다.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2코린 9,6-8)

이웃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특히 상황이 절망스럽고 불만족 스러우며
 
자신의 희생이 대부분 쓸모 없는 일이 되어버릴 때,

이런 때일수록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분은 우리의 희생을 보고 계시며,
 
그것이 사람의 눈엔 아무 쓸모 없이 보이고 절망스러울지라도

결실을 맺게 하실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은총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
 
우리의 두 눈이 열려 실제적이고 추호도 의심할 수 없는 선을

다른 사람들 안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며,
 
 이 같은 우리의 소명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될 것이다.


「삶과 거룩함」에서
Thomas Merton 지음 / 남재희 신부 옮김 / 생활성서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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