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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기 안에 예수님이 오실 때 [사회의 혁명 / 사랑의 혁명]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05 조회수464 추천수2 반대(0) 신고
Matthew Arnold
 
시인으로서 그는 자신의 경험들, 연인으로서의 자신의 외로움과 고립감, 찾을 수 없는 평정에의 동경, 청춘이 사라져 가는데 대한 우울한 감정따위를 주로 적는다. 무엇보다도 그는 인간의 역할이 어울리지 않게 보이는 데서 오는 우주 속에서의 자신의 절망감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병든 사회의 병든 인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경험한 대로의 현실이었다. 그는 자신이 쓰는 시에 대해서 스스로 불만을 품기도 하였다. 그의 시의 기초는 억제된 표현에도 불구하고 낭만적이며, 잃어가고 있는 젊음을 한탄하고, 회의가 가득찬 시대를 명상한다. 그는 자신의 시문에서 질문하고 그의 산문에서 답을 서술한다. 그가 살던 시대는 신앙이 퇴조하고 과학이 발전하는 과도기의 혼란한 시대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는 비평가이기도 하였다.
 
사회비평가로서의 아놀드는 빅토리아 시대 때, 그의 선배들은 중산계급을 향해 물질만능주의라든지 빈자의 고통에 대한 이기적인 무관심을 통박하였다. 그에 반해서 아놀드는 그가 말하는 이른바 '속물들'이 사악하기보다는 오히려 무지하고 옹졸하며 무미건조함에 살고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 새로운 분석은 미래의 세계가 중산계급, 즉 지도력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하고 문명생활을 누릴 소양 조차도 없는 계급의 손에 의해서 세계가 지배될 것이라는 확신을 말하였다.
 
아놀드 비평의 본성을 정의 내리면 정신의 자유로운 활동인데 여기서 말하는 정신의 자유로운 활동이란 기존의 사회에 대한 전복력을 가지게 하는 실천력이다. 혁명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당대의 '속물근성'과의 가차없는 싸움(중산계급의 속물들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확신에서)은 바로 그의 비평의 싸움이기도 하였다. '속물근성'이야 말로 기존의 체제에 종속시키는 성향을 가진다는 점에서 아놀드 비평의 주된 목적이 되었다.
 
그는 이런 사회에 치료약으로써 '교양'을 내세운다. 교양은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최상의 예술, 문학, 역사, 철학, 종교 등의 모든 분야에 걸친 유산을 즐길 수 있는 역량을 아울러 암시한다. 인생을 바라보는 한 방면으로서의 교양은 아놀드에게 병든 사회, 병든 인간을 치료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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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닐까 합니다
'사랑의 혁명'이야 말로 '병든 인간'을 진정으로
육신과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묘약이라 믿습니다 
이같은 사랑은 단지 수혜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 , 인간의 지식을 훨씬 초월하는 
인간 본연의 가장 깊은 곳에 고여 있는 
하느님으로부터 정화된 사랑 
그분의 사랑으로부터 정제되어진 사랑으로 
인간 최대의 질병인 '사랑의 결핍'을 처방함으로써
생명과 평화가 이루어지리라고 믿습니다
숨가쁜 혁명은 또다른 숨가쁜 혁명의 씨앗이 될 뿐
내면에 '사랑의 혁명'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의 혁명이 아니고서는 
인간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랑의 성체를 영하며 그리스도를 섬기는 
부활한 성체의 지체들은
성체의 힘으로
결코 인간적인 회의감에 무너지지 않고
주님의 진리에 순종하며 따르면서
십자가 나무를 제 몸 안에 새겨 이미 혁명을 실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내어 주신 
사랑실천의 십자가 혁명은 인류의 빛이 될 것입니다
 
 
 
훈훈한 성탄-
 
작성자   허윤석(drhur)  쪽지 번  호   32479
 
작성일   2007-12-25 오전 8:38:13 조회수   398 추천수   10
 
전 올 겨울 대림시기 동안 한동안 우울하였습니다.

빈부의 격차, 삭막해 지는 사회 분위기, 갈수록 사라지는 인간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 그리고 이기주의!

과연 크리스 마스는 지금 한국의 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렸을때의 성탄절을 생각해 보면 사회전반이 가난하고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그랬지만 무엇인가 훈훈한 정과 희망이 있었습니다.

올해 성탄을 맞아 저는 10년동안 저금한  커다란 돼지 저금통33개통에 꽉찬 돼지저통을 열었습니다. 

저금액이 생각보다 꽤큰 액수였습니다.

대림시기에 저금통을 턴 돈으로 고아원과 무의탁 노인들의 쉼터를 몇군데 방문하였습니다.

사제라는 신분은 드러내지 않은체 가서 그분들과 대화도 나누고 성금과 선물도 전달했습니다.

소박하고 비밀스럽게 보람있고  기쁜 방문이 되길 기대했던 저에게 그분들의 이야기의 삶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묻어나는 이야기와 눈물은 오히려 돌아오는 제마음을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가득했습니다.

 

한국사회의 발전된 모습! 수출이 늘고 해외여행이 늘고 외제차가 많아지고 백화점과 식품점에 넘쳐나는 음식들 매일매일 늘어가는 아파트 공사의 모습안에서 보여지는 모습안에서 저는 정말 많은 착각을 하고있었던 것 입니다.

아직도 배고프고 외롭고 병든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더 힘들어 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매년 그들에 대한 도움과 나눔의 손길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

그러면서 참으로 우리의 기도와 희생과 나눔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꼈고 동시에 참담하고 가난하고 암담한 현실앞에 살아야하는 많은 이웃들의 처지가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지면서 과연 교회인 우리가 무엇을 할수 있을까 얼마나 할수있을까? 나같인 작은 도움이 얼마나 도움이나 될까?라는 자괴감마저 들었습니다.

 

저보고 종교가 무엇이냐고 어느 할머니가 물으셨습니다.

"천주교입니다. 세자요한입니다. 세례명이!"

"예수님 사촌형이지라! 맞재? 난 엘리사벳이여! 세례자 요한 엄니!"

부탁이 있는니...........

우리 자식 외아들 우리 자식위해 이것 조금씩 봉투붙이는 일 해서 번돈으로 모은  미사예물인데

어디든 성당가서 미사예물 좀 접수해서 미사 넣어줘요

26일이 우리 아들 영명축일인데............

네! 할머니

그런데 놀란것은 다른 할머니 말씀이었습니다.

원래 잘사시던 할머니셨는데 외아들 내외가 80이 넘는 노모를 버리도 도망갔다고........

자기 아들 욕하면 역정내신다고...........

그 할머니 방 작은 거울 앞에는 작은 구유에 아기 예수님이 누워계셨습니다.

자기를 버린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구유

그 할머니의 구유 안에서 뭔지 모를 훈훈함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올해 우리 수녀원의 마굿간은 참 아름답고 예쁘게 꾸며졌습니다.

아저씨들의 노고와 본원장 수녀님의 예술적 감각과 추진력으로 저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한국적인 마굿간이 되었습니다.

외출하다 저녁때 돌아오면서 사회의 썰렁한 성탄절분위기를 보다가 수녀원 사제관으로 돌아오면서 예수님이 탄생할 마굿간을 보니 몇일 전부터 제마음속에 어린 시절 가졌던 훈훈한 성탄 분위기의 마음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땀을 흘려가며 정성스럽게 짚을 이어 예수님의 집을 만드는 솔로몬 아저씨의 작은 눈!

발갛게 달구어진 추위속에서도 열심하신 기관장 아저씨, 그리고 무엇을 느끼는지 관심있게

바라보며 이리저리 서성이며 대화를 나누는 듯한 믿음이와 소망이 부부!

참고로 이들은 멍멍이입니다.

저보다 더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썰렁한 마음을 갖고 있던 저에게 점점 완성되어가는 구유를 바라보는 것이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임마누엘!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문구를 저는 잠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저들은 왜 그렇게 가난할까?

그들을 도울 경제적 풍요가 우리와 함께가 더 우선적이다.라고 착각하였던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게 계시다면 저들은 왜 저렇게 병들고 죽어갈까?

그들에게 좋은 치료와 하루빨리 치유되어 건강이 더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하느님보다 돈 , 치유, 풍요, 평안, 등이 더 우선적으로 우리와 함께 함을 기다리지는 않은지?

저는 완성되어가는 가난한 마른 풀로 엮어 정성이라는 손으로 만들어 지는 작은 마굿간을 보면서 머리가 아닌 제 가슴이 훈훈해 짐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가난하고 초라하고 추원 마굿간에 탄생하셨지만

아기예수님이 마굿간 구유에 탄생되어 계심으로써 그 마굿간은 훈훈해 집니다.

훈훈(薰薰)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탄생을 표현하는 분위기가 훈훈한 분위기가 아닐까요?

 

훈훈하다는 말은 훈훈하기 전에 추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훈훈한 이공간 이외에 밖에는 아직 춥다는 말입니다.

훈훈이라는 말은 한문으로 풀초자에 충만할 중 자에 작을 소자에 마음심자 이렇게 4글자로 만들어집니다.

그 어원을 보면 옛날 가난한 이들은 마른 풀을 소나 양처럼 덮고 자는 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가난한 이들은 빈곤한 이들과 다른 개념으로 그 마른 풀을 서로 더 가난한 이들의 잠자리에 덮어주려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서로 더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려는 마음이 충만할 때 그마음은 따뜻해짐을 느낄수 있다고 하여 마른 풀을 서로의이불로 깔고 덮어주고 서로 감사하며 행복한 미소가 흐를때 바로 그 공간과 관계안에 있는 이들의 마음을 한문으로 훈자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잠시 유혹에 빠졌습니다.

우리는 하느님만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임마누엘은 완성이며 희망의 근거인데 그것을 이유로 전제로 하여 세상의 어둠을 한탄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그런데 왜 세상은 ........ 이라는 토를 달기 위한 단순한 문장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성탄은 훈훈함입니다. 성탄은 풍요와 풍유로서의 넘침이기 보다 나눔을 통한 신비의 훈훈함 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의 외침이 잠시 저에겐 와닿지 않았던 것은

바로 아기예수님의 훈훈한 겸손되고 소박한 사랑과 신비를 깨닫기 보다

사회사업가 혹은 정치개혁가의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저 가난하고 보잘것 없게 보이는 마른 풀로 엮은 마굿간 구유에 예수님을 안치시킬때 저는 정말 훈훈한 마음을 동심에서 처럼 다시 탄생됨을 오늘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제로서 이미사를 집전하는 저가 80세 넘은 엘리사벳 할머니의 따뜻한 정성어린 미사지향을 기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미사야 말로 그 엘리사벳 할머니의 정성어린 말처럼! " 사람이 나눌수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랑이라는 것!" 그리고 미사엔 할머니 말씀대로 "참회와 봉헌과 생명과 나눔과 영생과 희생과 부활과 축복이 있다는 것!"

 

봉투하난 붙이는 데 10원 미사예물은 20000원 2000번 봉투를 붙이면 기도하셨겠죠! 할머니!

부족한 우리 마치 보잘것 없고 마른 풀잎으로 이은 저 마굿간의 멍석과 가축들의 이불처럼

우리의 기도가 지금 이 훈훈한 미사성제의 은총의 열기를 담아내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저는 이 미사성제가 가난한고 어두운 이세상에 얼마나 훈훈한 구원과 생명의 온기가 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이 미사는 바로 아기예수님의 사랑방이며 아기예수님의 냄새가 물씬나는 훈훈한 행복 도가니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 그리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우리의 훈훈한 기도와 정성어린 마음이

이 세상에 자석적 심혈의 마음을 가져다 주는 성화의 탄생이 되길 바랍니다.

잠시 각자 우리 영혼의 가슴에 귀여운 아기예수님의 훈훈한 사랑의 온기를 주시는 그분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이시간 고통받고 외로운 이들에게도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시다.

 
 
 
<참고> 위의 파란색과 빨간색은 '사랑의 혁명'을 해석하기 위해 전달하고 싶은 표시입니다. / '개혁가의 마음'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 입니다.
 
'마굿간 구유'와 같은 자신의 마음 안에 '아기 예수님의 사랑'이 탄생할 때, 바로 '사랑의 혁명'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사랑의 실천 하나 하나가 "이 세상에 자석적 심혈의 마음을 가져다 주는 성화의 탄생이 되길 바랍니다."하시는 신부님의 소망과 함께 합니다. 사랑의 혁명이 진정한 혁명이 되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승리)을 차지할 것이다." (산상수훈)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앞으로 올 것의 '실체'를 우리에게 이미 전하여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며, 그리스도의 몸의 완성과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희망으로 구원받은 우리 ' 회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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