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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리읽는 복음 연중 제19주일 살아 있는 빵 / 글 : 유광수 신부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08 조회수557 추천수6 반대(0) 신고

    연중 제19주일/요한 6, 41-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너희끼리 투덜거리지 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을 주도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느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보살피신다. 하느님은 알파요, 오메가이시다. 즉 시작이요, 마침이시다.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느님한테 끝나는 것이다.

영성생활은 이러한 진리를 깨닫고 나의 모든 삶을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대로 따라 가도록 노력하는 생활이다. 즉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은 나의 머리카락까지 모든 것을 낱낱이 섭리하시는 분이시며 보살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이끌어 주시는 대로 따라가는 생활이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단 한발작도 나아갈 수 없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단 한 순간도 숨을 계속해서 쉴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한계이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 그것이 피조물의 한계이다.

하느님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이끌어 주셨고 거룩한 사람을 살도록 이끌어 주신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오도록 이끌어 주신다. 따라서 우리는 이끌어 주시는 대로 따라 가는 존재이지 내가 앞장서서 하느님을 이끌어 가는 창조주가 아니다.

하느님은 오늘도 나를 당신께로 이끌어 주신다.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신다. 영성생활을 하는 사람이 우선적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이런 원리를 깨닫는 것이고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나를 이끌어 주시는 분이 아버지이시라면 이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아버지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 어떤 자세로 나를 이끌어 주시는 분을 따라 가야 하는가? .

신앙생활은 무엇인가? 영성 생활은 무엇인가? 나를 이끌어 주시는 분을 따라 가는 생활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 오너라"고 부르셨다.

성 바오로 도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 가야 합니다."(갈라 5,25)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 8,14)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과 우리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 것이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 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요한 10, 14-15. 27-28)

그럼 어떻게 따라 가야 하는가? 오늘 복음에서 요한 이 그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다. 오늘 복음을 잘 살펴보면 단계적으로 제시해준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들을 찾아 보면 "나에게 오는 사람...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 믿는 사람...먹는 사람"이라는 말씀으로 표현되어 있다.

나를 이끌어 주시는 아버지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첫 번째 자세는 아버지께 가는 자세요, 두 번째 자세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자세요, 세 번째 자세는 듣고 배운 것을 믿는 자세요, 네 번째 자세는 듣고 배운 것을 먹는 자세이다.

우리가 아버지께 가기 위한 첫 번째 자세를 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찾아 나서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아 나서듯이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들만이 아버지께 나아가는 자세를 취한다. 아버지께 나아간다고 하더라도 주리고 목마름이 없다면 적극적이지 못하고 매우 소극적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들!"(마태 5, 6)이라고 하셨다. 나에게는 아버지께 가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가? 아버지께 가야 한다는 주리고 목마름이 있는가?

두 번째 자세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자세이다. 이것 또한 아버지의 말씀에 대한 주리고 목마름이 없다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우리가 아버지의 말씀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림과 목마름이 없기 때문이다. 배고프지 않은 사람에게 음식이 반갑지 않고 목마름이 없는 사람에게 물의 필요성을 못 느끼듯이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름이 없는 사람이라면 아버지의 말씀을 들어도 그 고마움을 느낄 수 없으리라. 맛을 못 느끼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 아버지의 말씀은 진 꿀보다 더 달도다." 라는 그 말을 이해하겠는가?

아버지의 말씀을 배우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다. 배우지 않는데 어떻게 알고 아버지께 나아가겠는가? 배움이 없이는 절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고 영성 생활을 발전시킬 수 없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은 아버지께 나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이다.

세 번째는 배운 것을 믿어야 한다. 믿음이 없는 배움은 지식은 많아졌을지 몰라도 아버지께 가는 것과는 무관하다. 성서를 공부한 학자들이라고 해서 또 신학자들이라고 해서 다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학문적으로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혀 영적이지 못하다.

배움은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켜 주는 배움이어야 한다. 어떤 배움이든 우리를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는 대로 잘 따라 가게 하는 믿음을 갖게 해주는 배움이어야 한다. 우리가 이것 저것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 것들이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켜주는 것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저해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네 번째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빵인 아버지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아무리 진수성찬이라도 내가 먹지 않으면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될 수 없다. 먹어야 산다. 먹어야 영양가를 공급받는다. 먹어야 힘이 나고 우리는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주는 빵인 말씀을 먹는 사람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

이것이 나를 이끌어 주시는 아버지께 나아가는 방법이요, 단계이다. 나를 이끌어 주시는 분을 따른다는 것은 추상적인 것도 아니며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다. 애매한 일도 아니다. 그 길은 분명하다.

영성생활은 항상 수동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즉 내가 주도하는 생활이 아니라 나를 이 끌어 주시는 분에게 나를 의탁하는 삶이다. 그렇다고 피상적인 자세는 아니다. 수동적이지만 적극적인 수동자세이어야 한다. 좋은 자세가 마리아의 자세이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의 말씀을 듣고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자세는 수동적인 자세이다. 그러나 수동적이지만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지도록 마리아는 혼신의 삶을 사셨다. 한번도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으셨고 아무리 고통스러운 순간이라도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지라도 말씀 하신 대로 이루어 지도록 그 말씀에 충실하셨다. 이것이 영성생활을 하는 수동적인 자세이다.

수동적이지만 적극적인 자세요,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지는 생활을 하기 위해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자세요, 실천하는 삶이다.

나를 아버지께로 이끌어 주시는 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을 바라보는데, 그리고 그분의 소리를 듣는데, 그분의 손길을 잡는데 모든 관심을 두어야 한다.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유광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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