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토요일 - ‘죄의식’이란 걸림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마귀를 쫓아내지 못한 이유가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한 사제에게는 참 가슴 아픈 진리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마귀도 쫓아내지 못하고 병도 고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정확히 말씀하셔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 외할머니는 예전에 몸속에 종양이 자란다는 말을 듣고 수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던 중 부산 교구의 치유의 은사를 받으신 신부님을 찾아갔고 그 신부님은 종양이 있는 곳에 손을 대시고 기도를 하신다음, 걱정할 것 없다고 하셨습니다. 정말로 30년이 지난 지금도 사진을 찍어보면 종양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커지지는 않았고, 그래서 90을 바라보시면서도 지금도 생존해 계십니다.
저도 아픈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서, 그들을 위해서라도 믿음을 키워서 기적을 일으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밤에 촛불을 켜 놓고 기도하다가 ‘믿기만 하면 너희가 못 할 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라는 말씀에 따라 촛불을 믿음으로 꺼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촛불을 똑바로 쳐다보며 “나는 믿는다. 꺼져라! 나는 믿는다. 촛불아 꺼져라!”라고 수 없이 되풀이하였습니다. 한참동안을 해도 입김에 의해서 촛불이 조금 흔들릴 뿐 꺼지지는 않았습니다. 화가 나서 “꺼져라!”하며 훅 불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서서히 미쳐가는군!’
얼마 뒤 큰 수술을 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미사에 나온 자매님께서 저에게 안수를 청하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기회다. 내가 믿음으로 이 자매를 고쳐보리라.’라고 생각하고, 안수를 하며 ‘주님, 믿습니다. 이 자매를 지금 고쳐주소서. 믿기만 하면 불가능할 것이 없다고 했으니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머리에서 손을 떼면서 무심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수술 잘 되실 거예요.”
결국 제 자신도 모르게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고 혼자 그렇게 기도 한 것도 처음부터 저의 믿음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말 믿었다면 처음부터 “수술 안 받으셔도 됩니다.”라고 말씀드렸어야 했을 것입니다.
저는 믿음이 약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보았습니다. 답을 발견하였는데, 내 안에 있는 ‘죄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안수를 할 때 지었던 죄들이 모두 떠오릅니다. 어제 술 마시고 실언 한 것, 게을러 기도를 제대로 못한 것, 교만했던 것들까지 모두 생각이 납니다. 그러면 안수하다가도 스스로 ‘나 같은 놈을 통해서 병이 고쳐질 리가 없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나를 통해서는 기적이 일어날 수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역시 죄와 믿음은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도 믿음으로 물 위를 걸었지만 큰 파도를 보고 예수님을 의심하게 됨으로써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죄를 지은 것 같지는 않지만 의심하게 된 것 안에는 교만의 죄가 들어있습니다. 즉, 호수에서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능력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더 믿었던 것입니다. 내가 그러기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양심의 심판은 끝까지 나의 믿음을 방해할 것입니다.
따라서 나를 통해 은총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기 위해서는 완전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믿음은 내 자신이 자신을 합당하게 여기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서 사라지게 됩니다.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이 사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통해 하느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실 것을 어렵지 않게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짓는 작은 잘못들 때문에 나를 통해 이웃에게 전해져야 할 은총의 통로가 막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록 사제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합니다. 우리가 주위 사람들에게 은총을 나누어주기 위해서라도 먼저 양심에 거리낌 없는 삶을 살기를 결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