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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월 9일 야곱의 우물- 요한6,41-51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09 조회수374 추천수2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그분을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유다인들’이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앞의 이야기(6, 1 ‐ 40)에서 ‘군중’(사람들)이었던 이들이 이제 ‘유다인들’로 불리며 그들의 ‘규격화’되고 ‘제한된’모습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수군거린 까닭은,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못마땅했기 때문입니다(41절). 그들 앞에 있는 사람은 자기들과 똑같은 인간인데,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빵이라고 하니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들이 알고 있는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 분명한데 무슨 해괴한 소리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을 먹였다고 해서(6, 1‐15), 예수가 자기들과 같은 인간이 아닌 ‘하늘에서 내려온’존재일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보고 귀에 들리는 대로 들을 뿐 그 너머로 안에 들어 있는 의미에 도달하기에는 한참 멀었습니다. 규격화되고 제한된 틀을 벗어나 진리에 의해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자신들을 종살이에서 해방하시고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구원의 손길을 깨닫지 못하고,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고 나와 광야에서 굶어 죽게 하느냐며 자기들을 이끄는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던’이스라엘 백성의 모습(탈출 16, 2‐8)이 떠오릅니다.
현재의 불편함과 곤고함에 짓눌려 하느님의 구원을 볼 수 없었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대놓고 따지지는 못합니다. 그저 자기들끼리 고개를 저으며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고는 있지만, 평범한 보통 사람들과 달리 ‘이적들’을 일으키는 특별한 능력과 권위를 지닌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불평과 수군거림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그들의 딱한 형편을 지적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44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만 예수님께 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누구시고 그분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저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도록 이끄시는 하느님의 손길에 인간 편에서 마음의 문을 열어야만 그분에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인간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또 그 믿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실 것입니다(에페 3, 17). 바오로 사도는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습니다.”

(2코린 4, 13)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른 차원의 주제를 말씀하십니다. 죽음과 생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그들에게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이스라엘 조상을 상기시킵니다. 광야의 고단한 여정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던 만나는 그들의 하루하루의 삶을 지탱해 주는 양식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정착지에 다다를 때까지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다. 가나안 땅 경계에 다다를 때까지 그들은 만나를 먹었던 것이다.”(탈출 16, 35)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들의 육체적 필요를 채워주셨던 만나는 물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하는 ‘불사’의 양식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의 진시황이 구했던 ‘불로장생’의 음식도 아니었습니다. 그날 하루 안에 먹도록 되어 있던 만나는 사람에게 하루 동안의 생명을 보장해 주는 ‘하루의 양식’일 뿐이었습니다
(탈출 16, 19).
그렇다면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은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먹는 것입니다.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50절)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51절) ‘살아 있는 빵’이신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한테서 받은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영원한 생명을 지니신 분께서, 당신 자신을 사람들에게 내주실 것입니다.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요한 1, 2)
셈어에서 ‘살(바사르)’이라는 말은 가능성과 동시에 한계를 지닌 인간의 실체를 이루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이란 말로 당신 실체를 사람들에게 주신다고 하십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 곧 사람을 참되게 그리고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 자신을 내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실체인 그 ‘살’을 먹는 사람은 그분이 지니고 계신 영원한 생명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인간적인 지식으로는, 눈에 보이는 현상에 잡혀 있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믿음의 영’이 우리 안에서 활발하게 일하실 때 도달할 수 있는 신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에페 5, 2), 오늘 우리는 그분으로 인하여 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소리 높여 외치겠습니다.
강선남(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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