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8.5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민수13,1-2.25-14,1.26-30.34-35 마태15,21-28
"영적전쟁"
삶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요,
낭만이 아니라 전쟁입니다.
땅의 전쟁 같은 현실에서
이상을, 낭만을, 하느님을 살아야 하는 영적 전쟁입니다.
치고받고 육박전의 전쟁이 아니라,
총칼을 들고 싸우는 잔인한 전쟁이 아니라
자기와 싸움인 영적전쟁입니다.
진정 힘겨운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나입니다.
두려움, 불안, 걱정, 자존심, 교만, 탐욕, 죄악 등과의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입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입고 있는 죽어서도 입고 가는 수도복은
흡사 ‘하느님의 전사들’인 수도승들의 전투복이란 생각도 듭니다.
수도원 주변의 풀을 깎기 시작한 지가 20일 째가 넘어 섭니다.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란 말을 실감합니다.
20일 지나니 깎은 자리에 다시 자욱하게 일어나는 풀들,
마치 적군이 밀려오는 듯 다시 깎게 되었습니다.
“금방 자라는 군요. 벌써 깎을 때가 됐군요.”
어느 형제의 말이 즉시 응답했습니다.
“이게 삶인 것 같습니다.
자라면 깎고, 자라면 또 깎듯이
늘 새롭게 시작하는 반복의 삶, 바로 이게 삶 같습니다.”
이래서 삶은 전쟁입니다.
의욕을 상실해 풀 깎기를 중단한다면
잡초들은 정원 전부를 점령하듯,
우리 역시 삶의 전의를 상실해 늘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면
곧장 몸과 마음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요,
이렇게 안으로부터 무너지면 아무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무기 좋고, 솜씨 좋아도 전의를 상실하면 백전백패이듯,
아무리 좋은 재능에 학식 있고 건강 있어도
삶의 의욕을 상실하면 이런 좋은 것들 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립니다.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할 때
영적전쟁에서 일당백의 사기가 충천한 전사들이 됩니다.
이래서 베네딕도 성인은 그의 수도승들에게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아무 것도 낫게 여기지 말라 하셨습니다.
예수님 역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하여 믿음과 사랑과 희망으로 충전시킬 때
일당백의 하느님의 영적전사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이래서 끊임없는 기도를 권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더불어
늘 충만한 사랑과 믿음과 희망을, 지혜를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어떤 가나안 부인은
수도승은 물론 믿는 이들의 모범이자
자기와의 싸움인 영적전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이겨야 주님을 이기고 이어 주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가나안 부인의 기도가, 믿음이 참 절실하고 간절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말 그대로 간절한 기도입니다.
자기를 이겼을 때 겸손에서 저절로 나오는 간절하고 진실한 기도입니다.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은 참 냉냉하기 그지 없습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냉정한 거절에 자존심이 상해 포기했을 법 한데,
가나안 부인 추호의 흔들림 없이 한걸음도 물러나지 않고
거듭 기도로 도전합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가나안 부인의 간절한 기도에도
주님의 마음은 요지부동 흔들림이 없습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이 말씀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자 몇이나 될까요?
지극한 인내와 겸손의
불퇴전의 영적용사 가나안 부인의 대응이 예수님보다 한 수 위입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즉시 자기와의 싸움에,
주님과의 싸움에 이긴 가나안 부인의 믿음에 감동하신
주님의 치유선언입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어제 믿음이 약한 자라 질책 받던
베드로에 대한 주님의 말씀과 좋은 대조가 됩니다.
가나안 부인 기도와 믿음으로 완전 무장한 영적전사의 모범입니다.
결코 좌절함이 없고 긍정적이요 적극적입니다.
바로 1독서 민수기에서 여푼네의 아들 칼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가나안 부인에 버금가는 영적용사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찰하고 온 이들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전의를 상실해
다 비관적 전망을 내 놓으며 절망할 때
이 두 일당백의 용사만은 사기가 충천하여 소리칩니다.
“어서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칼렙의 말에 이어
동행했던 자들의 부정적 비관적 전망이 온 힘을 빼버리는 느낌입니다.
“우리는 그 백성에게로 쳐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우리 눈에도 우리 자신이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랬을 것입니다.”
이런 자기비하의 열등감 가득하면 이미 전쟁은 끝난 것입니다.
늘 함께하시는 전능하신 하느님을 잊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들을 향한 주님의 분노의 말씀입니다.
“나 주님이 말한다.
나를 거슬러 모여든 이 악한 공동체 전체에게
나는 기어이 하고야 말겠다.
바로 이 광야에서 그들은 최후를 맞을 것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죽을 것이다.”
스무 살 이상 주님께 투덜댔던 모든 이들이 광야에서 죽고
하느님께 비전을 둔 영적용사, 칼렙과 여호수아만이
광야를 통과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도달했다 합니다.
주님은 광야 여정중인 우리 교회공동체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젖과 꿀이 흐르는 하늘나라를 미리 맛보게 하시고, 당신의 말씀과 성체의 젖과 꿀을 먹여주시어
우리 모두 용기백배, 사기충천하여
영적전쟁에 임하도록 해 주십니다.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속이 있네.”(시편130,7).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