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더 기뻐하는 일 [신앙의 지팡이 / 사상의 지팡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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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이수 | 작성일2009-08-10 | 조회수420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태오복음서 5, 7>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ㅡ 그는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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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대중을 바라보는 사람일수록 그에게서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없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하여) 다수를 명분으로 삼아 한 사람을 버리고 또 한 사람을 버리게 되는 일들은 오히려 많다. 자신을 크게 여기기 때문에 '작은 것'에는 연연하지 않겠는다는 그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보잘것 없는 잃어버린 양 하나" 에게 예수님이 계신다. 십자가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숨 걸고 그 양을 지키며 당신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99 와 1
99 가 1 보다 크다 = 정신의 작용 = 이념 (사상의 사제단) 1 은 99 보다 크다 = 마음의 작용 = 신앙 (사랑의 사제단)
100 마리의 양을 치는 두(2) 목자가 있었습니다
한 목자에게는 99 마리가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나는데 1 마리는 연약했습니다. 어느날,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목자는 99 마리의 양이 더 크다하여 1 마리는 그냥 내버려두고 99 마리와 함께 늑대를 피해 옮겨 갔습니다. 그 곳에서도 또 늑대는 나타났습니다. 98 마리는 잘 있는데 1 마리가 저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목자는 98 마리가 더 크다하고서는 1 마리를 내버려 두고서는 다시 옮겨 갔습니다. 역시 그 곳에서도 늑대는 나타났습니다. 97 마리 중에서 1 마리가 늑대에게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 목자는 97마리를 더 크다하여 1 마리를 내버려두고 또 옮겨갔습니다. ... 이런 식이 반복되었습니다. 이 목자에게 남아 있는 양은 겨우 50 마리가 되었습니다. 다른 목자에게도 100 마리의 양이 있었습니다. 1 마리가 연약했습니다. 늑대가 나타났지만 목자는 자기 목숨을 걸고 막대기로 늑대를 쫓아 내어 1 마리를 지켰습니다. 또 다시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목자는 전과 같이 자기 목숨을 걸고 길 잃은 1 마리 양을 지켜 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늑대가 나타날 때마다 이 목자는 99 보다 1 마리가 더 컸습니다. 그래서 자기 목숨을 걸고 1 마리를 끝까지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목자에게는 100 마리의 양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 마침내,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오셨습니다. 두 양치기 목자를 불렀습니다. 한 목자는 99가 1 보다 크다하여 1 마리씩 버리게 됨으로써 50 마리가 남았지만, 한 목자에게는 100 마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불충한 목자가 '인간의 진리, 이념의 선'으로써 변명을 했지만 자신의 '정신 작용'은 다른 목자의 '마음의 작용' 보다 못하였습니다. 무엇이 '선'인지는 하느님께서만 아실 수 있고 오직 하느님께서만 '선'하신 분이시기에 100 마리를 지켜 낸 목자는 사상의 힘 보다도 '하느님의 진리, 신앙의 힘'으로 충실히 일을 한 것이었습니다. 99 (대중)가 1(한 마리) 보다 커서 '선'이다고 판단한 이념의 불충한 목자는 스스로의 '자기 심판'에 따라 하느님으로부터 자비를 얻지 못하고 자기 자신이 도리어 그 1 마리가 되어 죽음의 늑대에게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정신의 작용으로 모두가 평등하다고 여기며 대중을 중히 하고 1 마리를 소홀히 한 불충한 목자는 '사상의 미신'에 따라 멸망에 이르렀습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오복음서 25, 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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