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2009.8.11 화요일 성녀 글라라(1193-1253) 동정 기념일
신명31,1-8 마태18,1-5.10.12-14
"하느님의 작은이들"
자연과 인위의 조화가 절실합니다.
자연친화적인 집이, 삶이 좋습니다.
인위가 자연을, 거대함이 작음을 압도하는 비인간화의 시대입니다.
멀쩡한 살아있는 자연의 강을
인위의 운하로 만든다는 발상이 참으로 어처구니없습니다.
점차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실재를 떠나 허상과 환상의 세계에서,
온통 인위의 한 가운데서 자기를 잃고 왜소하게 살아갑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고 자연스럽습니다.
가난과 겸손의 작음을 추구하는 영성이 화급한 시대입니다.
약육강식의, 큰 것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
참으로 깨어 작음의 영성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작음의 영성을 사는 이가 어린이 같은 사람입니다.
단순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온통 하느님께 신뢰와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들이 진정 하느님의 작은 사람들입니다.
외적으로야 작아 보일지 모르지만
진정 마음이 넉넉하고 자비로운 큰사람들입니다.
끊임없는 회개로 어린이처럼 되어야 하느님의 작은이들로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어린이처럼 하느님의 작은이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성경은 물론 교회의 성인들 모두가
어린이처럼 마음 가난한 작은이들이었습니다.
주님은 모세를 통해
여호수아는 물론 작은이들 되어 살려는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친히 네 앞에 서서 가시고,
너와 함께 계시며,
너를 버려두지도 않으실 것이니,
너는 두려워해서도 낙심해서도 안 된다.”
친히 작은이들의 배경이, 힘이 되어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동병상린,
이런 하느님의 작은이들은 하느님을 닮아
가난하고 소외된 작은이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합니다.
아무리 작은 자들이라도 존중 받고 싶은 욕구는 기본입니다.
사실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보다 큰 죄는 없고,
무시당하고 멸시 받는 것보다 더 큰 상처도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가난하고 소외된 작은이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하느님이십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작은이들을 향한 주님의 눈길을 늘 생각한다면
작은이들을 업신여기는 일은 꿈에도 못 할 것입니다.
길을 잃지 않은 아흔 아홉 의인보다
한 사람의 회개한 작은이를 기뻐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작은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작음의 영성을 추구하는 하느님의 작은이들은
하느님을 닮아 가난하고 소외된 작은 이들을 존중하고 사랑합니다.
끊임없는 회개로 어린이처럼 되어야 하느님의 작은이들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를 단순하고 겸손한 하느님의 작은이들 되어 살게 합니다.
“보라, 신랑이 오신다. 주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가라.”(마태25,6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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