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에고는 뱀 눈을 하고 노려보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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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대 | 작성일2009-08-19 | 조회수419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마태오 20:1-16)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St. John Chrysostom)은 자문(自問)해보았다.
“왜 밭 임자는 그들을 한꺼번에 고용하지 않았을까?” 성인은 이에 대해 “주님이라면 일꾼들을 한꺼번에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밭 임자는 일꾼들을 동시에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차이는 그들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일찍, 어떤 사람은 세 시에, 어떤 사람은 여섯 시에, 어떤 사람은 아홉 시에, 어떤 사람은 열 한 시에 호출되어 명령에 따랐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강도를 더 빨리 부르실 수도 있었지만 강도가 부르심에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아시고 부르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습니다.’하고 말한 것은 밭 임자가 아니라 아무 일이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 우화를 제대로 해석했다. 바로 앞의 복음에도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는 말씀이 나오고 오늘의 복음 마지막에도 같은 말씀이 나온다. 크리소스토모 성인의 말에 의하면 첫째는 첫째를 선택하고 꼴찌는 꼴지를 선택한 것이다. 가장 먼저 와 첫째를 선택한 사람은 그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품삯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은총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밭 임자의 자비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지 일꾼의 자격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 당시 랍비들이 한 시간 일한 사람과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의 품삯을 같이 지불한 밭 임자의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은 한 시간 일한 사람은 비록 일을 늦게 시작했지만 하루 종일 일한 사람만큼 일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즉 은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품삯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영광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공로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각은 달랐다. 가장 늦게 온 사람은 다른 사람과 같은 품삯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밭 임자의 자비 덕분에 꼭 같은 임금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밭 임자는 한 두 시간 일한 임금으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가족수당’을 붙여 같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밭 임자는 일꾼을 한낱 ‘일손’으로 보지 않고 ‘모든 인간’을 생각한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탕자(蕩子)의 이야기에서도 꼭 같은 논리를 적용하셨다.
큰 아들은 죽으라고 일을 했지만 아버지는 탕자가 돌아왔을 때 오히려 탕자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큰 잔치를 벌여주었다. 탕자는 회개하고 돌아왔지만 큰 아들은 영원한 생명의 의미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일찍 일을 시작한 일꾼처럼 큰 아들은 시기심에서 아버지에게 따져 물었다. 예수님은 회개한 죄인을 더 좋아하셨던 것이다.
오늘 복음은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의 ‘시기’를 말하고 있다. ‘밭 임자가 후(厚)해서 시기를 하고 있는(Is your eye evil because I am good?)’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어 성경에 ‘evil eye’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말로 하면 ‘뱀 눈’을 하고 노려 보는 것이다.
우리 속담대로면 ‘사촌이 밭을 사서 배가 아픈 것이다.’
에고는 ‘뱀 눈’을 갖고 있다. 에고는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오늘 저에게는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다른 사람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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