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인 들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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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셨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받아들이지 않는사람들 가운데에는 자기들 나름대로 하느님을 열심히 믿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율법에 충실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켜서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그들은 나를 헛되이 예배하며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 인양 가르친다." 라고 이사야 예언서의 말을 인용하여 하셨다.
마르코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인용하여 그 당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지적해서 말씀하셨고 오늘 또 다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전파되는 것은 우리 또한 이러한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즉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라는 것과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아마도 그 원인을 오늘 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즉 오늘 복음에서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의 전통을 하느님의 계명보다 더 중요시하고 또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무슨 말인가?
교회에 나오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계명들이 있다. 예를 들면 주일 미사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미사에 빠지면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 무슨 활동을 해야 한다. 아침 저녁 기도를 바쳐야 한다. 교무 금을 내야 한다. 주일 봉헌 금을 내어야 한다. 등 여러 가지 할 것들이 많이 있다.
교회에서 주로 교육시키는 것은 이러저러한 것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들에 대해서는 많은 강조를 하면서도 정작 가르쳐야 할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소홀히 한다.
즉 오늘 복음에서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라고 예수님이 지적하셨던 것을 오늘도 그대로 이행되고 있다.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고 무엇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뒷전에 두고 지켜야 할 계명들만 강조하다 보니까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라도 주일에 미사 참례에 나오고 교무 금을 내고 열심히 활동을 하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생각되고 또 그렇게 보인다.
10, 20 년 신앙 생활을 했으면서도 성서 한번 읽어본 적이 없고 제대로 성서를 공부한 적도 없고 또 성서의 내용에 무슨 말이 적혀 있는 지를 모르고 그냥 그냥 신앙 생활을 하는 신자들이 있다.
물론 교회에 처음 나오는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것을 가르쳐 주고 활동을 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신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섬세하게 가르쳐 주어야 하고 신자들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배우려고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입술로는 공경하여도 마음은 멀리 떠나 있는 신앙 생활을 하게 되는 이유는 하느님의 말씀을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고 전통을 지키도록 강요만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는 일에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이 좋고 열심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고 외적인 활동이나 종교적인 예식에만 얽매여 있을 때 전통적인 관습에 얽매여 있는 것이다. 성찬 예식에 참석하는 크리스찬은 과거의 전통이나 관습을 과감하게 부셔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이 사랑의 신비야 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전통이고 관습인 것이다.
신약의 모든 예식과 전례는 성체 성사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성체성사의 의미를 모르면 즉 우리를 위해서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는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리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사랑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미사 참례는 외적인 형식에 불과하고 형식적인 예절 준수에 그치고 말 것이다.
주일 미사참례를 했느냐 못했느냐? 판공 성사를 보았느냐 안 보았느냐? 미사 때에 일어서야 하는가 앉아야 하는가? 등 이런 모든 관습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하는가? 즉 나를 위해서 당신 자신의 몸과 피를 다 내어 주신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응답으로 하는가? 가 중요하다.
신앙생활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신앙생활이 수동적이고 부담감으로 느껴진다. 예수님에 대한 참된 예배는 입술로가 아닌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활동이나 외적 규정을 지키는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달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 너희는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배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예배 드리는 분을 잘 알고 있다.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요한 4, 22-24)
지금은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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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미사에 열심히 참례한다 하더라도 마음이 떠나 있을 때 그 미사는 헛된, 효과가 없는 미사가 될 수 있다. 예절도 존중되어야 하겠지만 그 예절에 참석하는 것이 이익이 되고 효과가 있으려면 예절의 의미를 잘 알아듣고 참석해야 할 것이다.
마음은 주님한테 멀리 떠나 있고 입술로만 공경하는 헛되게 예배하는 사람을 "위선자"라고 부른다.
[생략....] 결국 이런 위선자는 하느님이 아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고 하느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고 남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즉 섬김을 받는 행동이기 때문에 헛되게 예배하는 모습이다.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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