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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03 조회수524 추천수4 반대(0) 신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 윤경재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5,1-11)

 

 

이스라엘 성지 순례에 가서 베드로가 고기잡이한 곳에 가보았습니다. 그곳을 타브가라고 부르는데 언덕에서 일곱 개의 샘물이 솟아나는 곳이라는 뜻이랍니다. 맑고 신선한 샘물이 티베리아 호수로 흘러들어 가 그 주변이 다른 곳보다 산소용존율이 높고 먹이가 풍부해 물고기들이 잘 잡힌다고 합니다. 우리가 찾은 날도 안내인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 물방울이 뽀글뽀글 솟아오르고 물색도 다른 곳보다 어두웠습니다. 우리는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 온통 물고기라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저기에 그물을 던지면 그물이 찢어지도록 물고기가 잡히겠다고 농담을 주고받았습니다. 초행인 우리가 봐도 한눈에 좋은 목을 찾겠는데 노련한 어부 베드로는 얼마나 잘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상식을 깨는 요청을 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어부가 고기 잡을 때 그물질로 잡는 방법과 낚시로 잡는 방법이 있답니다. 그물질은 고기가 잠을 잘 때 잡는 방식이고, 낚시질은 고기가 먹이를 먹으려고 입질할 때를 노려 잡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물속 깊숙이 잠자고 있는 물고기를 잡고 싶으셨습니다. 그러려면 눈에 잘 띄는 곳에서 노는 물고기를 손쉽게 잡을 것이 아니라 힘들여 노를 저어 물 깊은 데로 나가야 했습니다. 또 새벽이면 부는 폭풍을 맞을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호수를 악령이 사는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한밤중에는 호수 깊숙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안전하게 호숫가에서 가까운 곳에서 고기잡이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안이하게 생각하고 생활하는 베드로의 능력을 일깨워 모험을 감내하며 싸우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훼방하는 악령과 맞붙어 싸워야 했습니다. 도중에 실패와 환란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리 겁을 먹고 주저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베드로더러 호수 깊은 데로 저어 가라는 명령은 아마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라는 속담을 떠올리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탄과 내기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욥기 1장 6-12절에 보면 욥을 두고 사탄이 장담하는 것에 맞대응하셨습니다.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 그렇지만 당신께서 손을 펴시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 보십시오. 그는 틀림없이 당신을 눈앞에서 저주할 것입니다.” “좋다, 그의 모든 소유를 네 손에 넘긴다. 다만 그에게는 손을 대지 마라.”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사탄을 거슬러 이겨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셨습니다. 그러셨기에 인간에게 하느님을 배반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허용하는 모험을 감행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사탄에게 자주 유혹을 당하여 마음이 아프시겠지만, 결국 인간이 승리하고 하느님께 돌아오리라 굳게 믿으셨기에 그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세계 한가운데 빠져 잠을 자듯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을 낚으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또 그런 사람들을 낚는 데 필요한 어부를 뽑으시고 기르셨습니다. 바로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베드로와 같이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이 두 번 나오는데 이때 단어가 사뭇 다릅니다. 앞에서는 선생님(epistates)이고 나중에는 주님입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자신이 이성으로 생각해서 부른 것이고, 주님이라는 고백은 영으로 체험하여 나온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좁은 소견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너무 엄청난 지혜의 크기에 압도되어 자기의 삶이 비뚤어져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이끄시는 방법은 먼저 신뢰의 행동을 보이시고 나중에 자신의 가난을 고백하게 하십니다. 베드로처럼 자신의 가난을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은 남들이 비합리적이고 모순이라고 외면하는 것도 용감히 나설 수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라야 호랑이 굴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하느님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으신다.’라고 말했지만, 저는 주사위를 던지시는 분이야말로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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