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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둠을 넘어서는 생명의 교류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15 조회수836 추천수6 반대(0) 신고
 
 

어둠을 넘어서는 생명의 교류 - 윤경재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 19,25-27)

 

 

골고타 언덕 위에서 벌어진 세 인물의 만남은 깜깜하게만 보이는 십자가의 신비를 어느 정도 엿보게 해줍니다. 

어둔 밤의 절정에서 만난 세 인물은 한 발짝 더 내딛기로 하였습니다. 우선 아버지께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분께서 이렇게 자신의 신뢰를 아버지께 표현하셨습니다. 막다른 골목인 줄로만 알았더니 돌파구를 찾으셨습니다. 새로 하늘이 열리는 길을 찾으셨습니다. 모든 게 끝장난 것이 아니라 어머니는 새 아들을 출산하시고, 제자는 새 어머니를 만나는 장이 열렸습니다. 낭떠러지에 선 두 사람에게 놀랍게도 하늘에서 밧줄이 내려온 것입니다. 죽어가는 자식을 지켜보는 어미의 찢어지는 마음과 울타리였던 스승을 떠나보내는 공허감을 극도로 무력하게만 보이는 분께서 어루만져 주십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어머니와 제자, 두 인물은 서로 대조적인 면이 두드러집니다. 성모 마리아는 여성의 대표이며, 제자는 남성의 대표이었습니다. 노부인과 젊은이, 성숙과 젊음, 직관과 이성, 구약을 마무리하시는 분과 신약에 동참한 사도가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절망에 마음이 찢어졌습니다. 두 인물이 지녔던 대립적 요소가 골고타에서 하나로 통합되었습니다. 비록 절망의 순간이지만 역설적으로 완벽한 일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아드님께서 어머니를 부르시며 이제는 아들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아들을 놓아 달라고 부탁하십니다. 그러면 또 다른 예수를 얻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머니께서 성령으로 받은 잉태와 출산력을 제자에게 전달해 줌으로써 무수한 제자가 예수를 잉태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어머니처럼 또 다른 예수를 낳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자에게는 다시 새롭게 태어날 모태를 보여 줍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요한3,3) 요한복음서 3장 니코데모의 질문에 대한 구체적 답변이 여기서 증명됩니다. 아리송하게만 들렸던 스승의 말씀이 명료하게 드러났습니다. 성령을 영접했던 모태를 본받아 너희도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체험한 따뜻한 자궁의 사랑을 너희도 느껴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인간의 원체험으로 남아 있는 자궁의 기억을 되새겨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제자의 연결은 죽음의 장소에서 생명의 잉태를 바라보라는 요청이셨습니다.

인간에게 고통이라는 어둔 밤은 끊이지 않고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둠 밤을 돌파하는 자는 생명의 끈을 부여잡을 것입니다. 그 돌파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죽음 곁에 동참했을 때,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 십자가 위에 못 박혀 매달린 분께서 내려주시는 선물입니다. 주님의 현존이 더는 계시지 않을 것 같은 어둠 속에서 생명의 위로는 빛을 발합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이 더 잘 보이는 법입니다.

골고타 언덕에서 사랑하는 예수를 잃은 두 실재는 놀랍게도 서로 상대방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상대방 안에서 새롭게 거처를 정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잉태를 소중이 받아들이고 기꺼이 보살폈습니다. 후손에게 대물림하였습니다. 인간 유전자 속에 깊이깊이 각인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올라가신 분을 찾느냐 눈을 하늘에 고정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 곁에서 예수님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자신도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웃입니다. 그 이웃이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발견하도록 자신은 죄의 더께를 가능한 한 덜어내야 합니다. 비록 우리의 죄가 남아 있어도 성령의 불꽃은 워낙 강렬하여 우리를 꿰뚫고 계시겠지만, 죄 탓에 서로 헤매는 어리석음을 조금이나마 덜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죄가 만든 골고타 언덕이 은총의 언덕이었다는 진리를 고백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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