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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지혜의 자녀 되기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16 조회수1,850 추천수17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 24 주간 수요일 - 지혜의 자녀 되기

 

 

 

유럽이 대부분 그리스도교 국가들이라고는 하지만 젊은이들을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신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아일랜드에서 영어 학원을 다닐 때 행복하기 위해선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더니 어떤 청년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완고하게 저항했고 다른 청년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믿는 행복은 사랑, 가족, 돈, 성공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종교란 자신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하나의 굴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에게는 그 억압이라 불리는 것이 참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진리요 현실입니다.

 

이런 신앙에 대한 무관심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 하던 그건 나와 상관없는 것이고 나의 생각이 옳아 그 생각대로만 살아가겠다는 뜻입니다.

이들에게도 이러저러한 핑계가 있습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들도 종교에 대해 판단해 볼대로 다 판단해 보았지만 그들의 판단으로는 종교를 갖는다는 것이 이성적으로 합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이 믿지 않는 것은 우리가 믿는 것이 믿을만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믿음 때문에 자신들의 삶이 변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해야 하는 많은 의무들이 젊은이들에겐 버거운 것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사막의 어려움을 겪는 것을 원치 않는 것입니다.

가끔은 밖에서 운전을 하다가 지하 주차장에 내려와서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것을 잊고 왜 이렇게 어둡냐고 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나에게 있는데 보이는 현상들을 불평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세례자 요한은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 마귀 들린 사람에 불과하고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들과도 어울려 먹고 마시는 먹보요 술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 요한은 악한 인간의 육체적인 본성을 절제하며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위대한 성인이고, 그리스도는 사람의 시선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장 비천한 죄인들과도 어울릴 수 있는 사랑 가득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아이들이 피리를 분다는 것은 기쁜 때를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춤을 추어야 할 때 슬퍼하며, 또 곡을 하며 울어야 할 때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듯이 기뻐해야 할 때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함께 슬퍼해 주는 사람보다 함께 기뻐해 주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때 함께 슬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 번은 어떤 자매님이 요즘 교회 신학의 방향이 바뀌고 있느냐고 저에게 질문하였습니다. 저는 무슨 소린지 몰라 다시 물어보았더니, 어떤 신학 박사로부터 강의를 듣고 왔는데 그 분은 성경을 심층심리학적으로 해석해 주시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기적들을 인정하지 않고, 연옥이나 사제의 독신제, 원죄에 관한 문제 등이 구약의 산물이고, 이제 새로운 신학이 도래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분이 누구냐고 먼저 물었습니다. 그 분은 주저하시며 결혼하기 위해 옷을 벗으신 신부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학을 십년이상 하고 매우 똑똑한 분이라서 성경을 바탕으로 하시는 말씀이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우선 교회에서 정해 놓은 교의들은 절대 바뀔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들과 상반되는 의견들을 제시하며 교회가 그렇게 변화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 정말 그래서가 아니라 본인이 그렇게 되었으면 좋을 것 같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분은 유학까지 하면서 신학을 공부하신 분이시지만 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순수한 신앙은 지니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2000년 동안 교회가 정해 놓은 것들보다 자신 개인의 생각이 더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마치 유다 지도자들이 요한과 예수님을 자신 마음대로 평가 한 것처럼 성경과 교회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저의 대학 친구들도 신앙이 없습니다. 그들은 저를 보면 계속 반복해서 행복하냐고 묻습니다. 저는 계속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엔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사는 사제가 과연 행복한 삶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의 신앙으로 그들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을 위해 목숨을 아깝지 않게 여겼던 순교자들이나 마더 데레사와 같은 성인들은 이 세상이 말하는 지혜보다 더 큰 무엇이 있음을 보여주신 분들입니다.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우리는 지혜의 자녀들입니다. 지혜의 자녀들인 우리가 믿음으로 진정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만약 신앙인들이 행복해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옳았다고 할 것입니다.

 

삶이 변화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진리까지도 왜곡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배운 사람일수록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워낙 공부를 많이 해서 이성적으로 설득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 한 가지, 우리의 단순한 신앙으로 진정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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