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자유를 잃어버린 강박증 환자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16 조회수564 추천수3 반대(0) 신고
 
 

자유를 잃어버린 강박증 환자 - 윤경재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루카 7,31-35)

 

 

신명기 21,20-21절에 완악하고 반항적인 자식을 고발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우리 아들은 고집이 셀뿐더러 반항만 하며 우리 말을 듣지 않는데다가 방탕아이고 술꾼입니다.’ 그러면 그 성읍의 남자들이 모두 그에게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 그렇게 너희는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치워 버려야 한다. 온 이스라엘은 그것을 듣고 두려워할 것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나타납니다. 자기들 말을 듣지 않는 방탕아이고 술꾼이므로 돌로 쳐 죽여야 마땅하다고 판정하였습니다. 예수께서도 이 사실을 잘 아셨습니다. 언젠가 이런 사태가 오리라는 것을 짐작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격이 전혀 다른 두 분을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먼저 세례자 요한은 나지르인 서약을 한 대로 단식과 절제와 회개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즐겁게 살고 싶은데 거지꼴을 한 자가 골치 아프게 군다고 투덜대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예수께서는 적극적으로 죄인들이나 여인들과 어울리며 다녔습니다. 세리들과 함께 잔치를 열어 술과 음식을 먹고 마셨습니다. 찾아오는 창녀들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회개 선포도 복음 선포도 자기네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거절하였습니다. 시대의 표징이 연속 주어졌는데도 알아채지 못하였습니다. 표징은 본디 평소와 색다른 것입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야 주목하는 법입니다. 독수리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맴돌지 않습니다. 먹잇감을 냄새로 눈으로 찾았기에 하늘을 맴도는 것입니다. 

표징은 무엇인가 있음을 직감하고 잠시 멈추어 그것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자에게만 확연히 보입니다. 힐끗 지나치면 영영 놓쳐버립니다. 

인간은 외부 자극을 오감을 통해서 받아들입니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촉감이 그것입니다. 인간은 여기에 추측이라는 육감이 발달하여 있습니다. 오감을 종합하고 옛 기억을 더듬어 판단하는 감각입니다. 오감만으로 느낄 수 없는 정보를 파악하는데 유용하게 쓰입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여섯 감각 외에 감정도 큰 작용을 한다고 밝혀졌습니다. 喜, 怒, 哀, 樂, 愛, 惡, 慾, 恐, 懼, 驚 등의 감정이 감각과 한데 작용하여 강도를 증폭하거나 약화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 중에는 실제로 복숭아 털에 항체가 없으면서도 알레르기 반응을 낸다고 합니다. 복숭아를 보면 예전에 느꼈던 감정이 순간적으로 떠올라 그 감정에 격렬한 반응을 해서 알레르기 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요사이 원인이 불분명한 알레르기 질환이 급속하게 증가하였는데 실제로 항원·항체 반응이 아니라 심리적 감정 탓이 크다는 보고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감정을 되돌아보고 추슬러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어떤 대상물을 보고 느꼈던 감정적 반응을 순순히 인정하는 단계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언행에 감정적 반응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랬기에 알레르기와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표징을 표징으로 읽지 못하고 신성모독이며, 정치적 반란으로 치부한 것입니다. 그러고는 예수를 처단할 합당한 규정을 율법에서 찾아내려 노력하였습니다. 터무니없는 규정을 갖다 대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현대인인 우리도 바리사이나 율법학자처럼 행동하는 적이 많습니다. 이성적 판단보다는 격렬한 감정에 휘둘려 반응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해소하지 못한 채 그런 상황이 되면 까닭도 없이 흥분하게 됩니다. 그것을 ‘강박’이라 부릅니다. 강박에 빠지면 이래도 저래도 거절과 반대만 하게 됩니다. 자동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자동인형처럼 스위치만 누르면 동작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유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자기의 자유뿐만 아니라 남의 자유도 제한하려 듭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에게 참 자유를 주시고자 오셨습니다. 자유가 어떤 것인지 한 번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제 십자가를 매는 사람이 자유를 얻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자기가 모르는 강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치부를 고백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거짓으로 꾸미지 않고 자신을 인정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를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를 위한 커다란 발걸음을 떼자고 예수께서는 지금도 외치고 계십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