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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체험의 공감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19 조회수487 추천수3 반대(0) 신고
 
 

체험의 공감 - 윤경재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 버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외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비유의 뜻을 묻자,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루카 8,4-15)

 

 

성경을 전공하신 사제들께서 성경 공부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처음으로 해주시는 말씀이 ‘성경은 하느님 체험의 글’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듯한 말씀입니다. 구약은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 하느님을 체험한 내용이며, 신약은 예수님께서 가리켜 보이신 아빠 하느님을 새 백성이 체험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에 기록된 체험을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다시 체험하느냐입니다. 하느님 체험을 어떻게 우리 것으로 현재화하느냐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경험은 비슷할 수는 있어도 똑같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시대와 환경이 다르고 남녀, 빈부귀천 등등 자신의 입장이 다릅니다. 각자 생각과 반응이 비슷할 수는 있어도 엄연히 다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떤 경험의 결과를 의외로 똑같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그것을 공감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어떤 객관적 경험이 개인에게 깊이 각인될 때 우리는 그것을 ‘체험했다’라고 말합니다. 체험은 개인의 주관적인 반응으로 그 체험을 통해 가치관이 형성됩니다. 

주관적 내용인 체험은 간접 경험으로 접했다가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자기도 모르게 불현듯 떠오르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모세가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글에 적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그와 똑같은 경험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 이상한 경험을 했을 때 모세의 이야기가 떠올라 모세의 체험을 공감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모세와 같은 체험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 경험 내용은 다르지만 주관적 체험은 하느님의 현존을 느낌으로서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늘 무엇인가 경험하고 체험하면서 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그저 그런 일상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체험하는지 의식하지 못하고 삽니다. 소수의 깨어 있는 사람만이 그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체험합니다. 아니면 상황이 절실해졌을 때라야 비로소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반 강제적으로 경험하여야 자각하는 어리석음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고난을 겪으며 하느님을 체험한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성경에는 정직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솔직한 유대인의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유대인은 조상의 치부를 감추지 않고 솔직히 적었습니다. 단 한 분만이 至高至善하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마태 19,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지고 지선하다고 여길 때가 가장 큰 죄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과 같아지려고 시도하는 것이 죄의 근원입니다. 원죄입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잊고 사는 것이 죄입니다. 

결국 성경의 내용은 이런 체험을 뼈저리게 느꼈던 사람들이 지은 고백서입니다. 그런 체험은 고난과 고통 중에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법입니다. 성경은 어느 곳을 들추어도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성경은 진리를 주장하기보다 이야기처럼 풀어냅니다. 논리를 가지고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해보라고 권유합니다. 어떤 때는 위로했다가 격려하고, 위협하기도 저주하기조차 합니다. 

성경은 ‘뒤돌아보니 하느님께서 우리 곁에 계셨다.’는 고백의 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배반하고 잊고 살았지만 스스로 뒤돌아보니 한시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셨던 하느님을 체험했다는 글입니다. 그러니 이 고백서를 읽는 사람들은 조상이 저지른 어리석은 죄를 따르지 말고 하느님께 돌아서라는 피 맺힌 절규를 적어 놓았습니다.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8,10)

어쩌면 저주처럼 들리는 이 말씀을 정말 새겨들어야 합니다. 이사야서 6,10에서 하느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시며 내리시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더 뜨거운 맛을 보아야 정신을 차릴 터이니 그리 알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저류에는 하느님의 넘치는 사랑이 실려 있습니다. 

신앙인이 새겨야 하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은 우리더러 성경의 깊은 체험에 공감하라는 요청입니다. 그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절박함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길이 될지, 바위가 될지, 가시덤불이 될지, 아니면 좋은 땅이 될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정말 들을 귀 있는 사람만이 잘 들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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