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견뎌낸다는 것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21 조회수601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루카 7:31-35)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는 문학 비평가를
작가와 고통을 함께 나누는 문학 귀뚜라미라고 불렀다.
귀뚜라미는 온도 변화에 민감하여 온도가 떨어지면 울음소리가 느려진다.
과학자들은 15 초 동안의 울음소리 수에 40을 더하면 화씨 온도가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15 초 동안에 서른 번을 울면 화씨 70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머리카락 수 까지도 헤아리고 계시다는 말씀이시다.
 
뚜렷한 주관이 없거나 자신의 주체성을 갖고 있지 않은 비평가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주체성을 만들려고 애쓴다.
책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누구나 귀뚜라미가 될 수 있다.
기쁜 일은 없고 모든 일이 잘 못되어 가고 있다.
그리하여 아주 빈곤하고 어려웠던 과거로 돌아가버린다.
 
몇 년 전에 한 번도 ‘예’라고 말하지 않은 주교를 만났다.
그는 항상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령 편지를 보내어 답이 없으면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했다. ‘아니오’하고 답하면 책임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무덤을 파는 것이 된다. 살아 있다는 것은 매사에 라고 말하는 것이며 는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위험을 피하기만 하면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으며 아무 봉사도 하지 못하게 된다. 최소한으로 ‘예’라고 답하면 기쁘게 되지만 이 이하가 되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토라져서 샐쭉해진 어린이 같이 되어 버린다.
때때로 영혼을 뒤흔드는 사람을 만나는 수가 있다.
그들은 고통을 많이 겪은 사람이다. 견딘다(to suffer)는 것은 허락한다(to allow)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생을 하지 않은 사람은 고생을 모른다는 말이다.
그래서 고통을 많이 겪은 사람은 고통이 오더라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남편을 잃고 무척 괴로워하는 자매님에게 고통은 개와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개는 무척 집요하다. 피해서 등을 돌려 도망가면 물어버린다.
고통은 힘들게 하고 괴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기쁨을 만날 기회를 주기도 한다.
불행을 맛보지 않으면 행복을 알 수가 없는 법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