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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거짓 예언자들 [ 세상과 연합하는 무리 ]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21 조회수442 추천수1 반대(0) 신고

실행하는 것

이전에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듣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 화요일 복음 / † 루카복음서 8,1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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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말씀'를 듣고 그 말씀에 따르기 보다는 /  '세상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하느님의 말씀'은 듣지 못하기 때문이고 / '세상의 소리'는 듣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읽는다는 것이며 /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세상의 소리를 읽는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읽지 못하고 '세상의 소리'는 읽을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명료할 수 있다. '하느님의 말씀' 보다는 '세상의 소리'에 자신의 눈과 귀를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기 보다는 '세상의 소리'에 가까이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매일 읽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의 소리'는 매일 읽는 것이다. 가끔씩 성경 말씀의 이 부분과 저 부분을 보되(읽되) '세상의 소리'에 끼워 맞추어 보는 것이다. 그러니 왜곡되어질 수 밖에 없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세상의 소리'에 따라 '하느님의 말씀'을 해석해 내는 것들을 받아들인다. 인간의 입을 통해서 세상이 말씀을 해석하는 일이다. (인간이 말씀을 해석한다는 뜻이다) 이는 세상이 하느님을 지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죄악이다. 그러나 '세상의 소리'에 눈과 귀를 열어 둔 영혼은 이를 알지 못한다. 오히려 실천적인 것으로 더욱 신뢰하게 된다. 마약을 먹는 사람은 마약에 중독되어 '마약의 해악'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에 자기 영혼의 눈과 귀를 열어 놓은 사람은 세상이 말씀을 해석하지 못하게 한다. (말씀이 인간을 해석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말씀을 해석한다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세상이 하느님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마약을 식별해 내며 마약과 같은 '세상의 소리'를 감지해 낼 수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말씀을 해석하는게 아니라 말씀(하느님)께서 그 인간과 세상을 해석해 주시기 때문이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이 바로 당신 자신의 말(말씀)을 해석해 주신다는 의미이다. 하느님 안에 있는 영혼은 하느님께서 결코 버리시지 않는다. 도리어 하느님께서는 그 영혼이 당신에게서 떠나지 못하도록 오히려 사로잡고 계신다. 예언하게 하신다는 의미이다. '세상의 소리'는 예언이 아니다. 이를 두고 '거짓 예언(자)'들이다고 부른다. 그들의 '세상의 소리'는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자기가 읽는 세상(정치적인 이념사상)들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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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주체가 되어 모든 것(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자신이 없다는 그런 뜻이 아니다)을 다스려야 한다. 모든 것(세상) 안에 자신(인간)이 들어 있다면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세상)들에 자신(인간)이 지배를 받는 것이다. 사탄은 광야에서 예수님께 유혹하기를 세상 영광(즉, 여기서의 '모든 것'을 말한다)을 다 주겠다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영광을 거절하였다
이는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은 예수님 자신 안에 담겨져 있으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탄은 세상이 자기 것이라고 말하면서
세상 모든 것 안에 예수님을 속박시켜(들어오게 함으로써) 예수님을 지배하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반대로 자신 안에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하려고 하셨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이 모든 것을 없애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조화가 아닌 파괴는 생명이 아닌 죽음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세상) 안에 자신(인간)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자신 안에다 모든 것들을 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겸손한 자세이다. 자신 안에 겸손으로 만물을 포용하는 것은 만물의 다스림(섬김)이지 만물의 지배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영광(모든 것 안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하셨던 것이다.
 
세상 영광, 모든 것들 안(위)에 들어가면 세상 영광(모든 것들)에 도리어 지배당하고 만다.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하느님께만 경배드리며 '당신의 모상'인 사람을 섬기러(사랑하러) 오셨다. 겸손(섬김)으로 만물을 가지지 않으시고 오히려 만물의 모든 것들에게 자신을 내어 주는 것으로 모든 것들이 생명으로 넘치게 하셨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없애는 파괴의 죽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모든 것들에게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내어 줌으로써 평화의 생명을 이루게 하는 '자기 자신의 버림' ( '자기가 읽는 세상의 버림' ) 이다.

 <완전한 가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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