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당신의 잔 속에 담긴 희망/시련이 주는 뜻밖의 이익 | |||
---|---|---|---|---|
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09-09-22 | 조회수541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우리가 겪는 시련으로 인해 하느님이 원하시는 결과를 내고, 사람들과 분리되어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길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하느님의 선으로 인해 우리 가정에 쏟아지는 축복을 보아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곧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불행을 허락하셨던 때만큼 우리를 많이 사랑하신 적은 없으며, 만일 하느님이 우리에게 부와 영예와 자녀와 건강을 주면서 너그러우심을 보이셨다면 내가 말하는 것은 결코 인내를 통해 얻는 공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시련 속에 지낸 하루가 기쁨 속에서 보낸 수년간보다 순조로운 생활이 우리를 나약하게 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세상의 기준에 따르면 행복한 사람이 하루에 한두 번 그 자체로 이미 대단한 것이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물질적 부유함이 그의 정신을 만족시켜 주므로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불행을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온갖 상황 안에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다는 것과, 즐거운 상황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삶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사람만큼 즐거움 속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은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왕자가 주재하는 조정회의에 따라가고 왕자를 기쁘게 하며 반면에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사람은 수많은 위험과 피를 흘릴 각오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어 이처럼 매우 건강하게 부를 누리며 영예 속에 살면서 그의 행동을 통해 하늘의 주인께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가 그에게서 모든 재산을 박탈하고 만일 그가 그런 불행 속에서도 똑같은 감정과 또 그토록 어렵고 자기 뜻에 어긋나는 길에서도 그는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은총의 효과를
공로와 구원의 기회 이 때문에 가시밭길에서 주님을 영광스럽게 한 사람들이 그분께로부터 얼마나 큰 영광을 받길 기대할 수 있겠는지 판단해 보라. 그때가 되면 그토록 풍요로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공로를 세우도록 그때가 되면 우리의 지복을 더해주는 것에 관해 불평한 것과 그분의 선의를 의심한 것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라면 당장 오늘부터 행복한 마음가짐을 지녀선 안 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 세상에 실면서 겪는 불행 중에 왜 하느님을 찬양하지 않는가? 그 불행에 대해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한 감사를 드릴 것을 확신하는 터에 말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살았든지 간에 시련을 당할 때 언제나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만일 우리가 선하다면 시련을 당함으로써 정화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며 덕과 공로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악하다면 시련을 당함으로써 바로잡히고 덕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당신이 희망하는 만큼 받게 될 것입니다 생 쥐르 · 라 콜롱비에르 지음 / 조안나 옮김 / 바오로딸 펴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