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25 주간 수요일 - 사제가 가난서원을 하지 않는 이유
제가 보좌신부를 할 때 차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이 급한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저에게 돈을 청했습니다. 꾸어 달라고 할 때 그 청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또 느낌이 되돌려 받게 될 것 같지 않았지만 그냥 그 때까지 모은 돈을 다 주어버렸습니다.
사제라면 대부분 이런 경험을 지니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일로 느끼게 되는 공통적인 생각은 차라리 통장에 돈이 하나도 없는 것이 속 편하다는 것입니다. 돈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더 필요한 사람에게 주지 못하는 것 또한 죄책감이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를 보셨을 것입니다.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유태인들을 몰래 빼내는 영화입니다. 그는 자신의 돈으로 독일 군인들을 매수하여 죽을 운명의 유태인들을 수용소에서 빼냅니다. 그런데 나중에 쉰들러라는 사람은 크게 후회합니다. 아직 반지와 시계, 차를 팔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을 팔았더라면 또 몇 명의 생명을 더 구할 수 있었겠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어느 순간에 우리가 남겨놓은 돈 때문에 크게 후회할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모아 놓은 돈 모두를 누구에게 주었다고 해서 그것을 잘 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 사제로서 창피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돈을 모았다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제가 될 때 결심한 것이 있었습니다. 돈을 모으지 말자는 것입니다. 경영학을 공부할 때 “Zero sum project”란 말을 배웠었습니다. 그 의미는 회개 장부의 대차변이 항상 Zero, 즉 ‘0’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기는 것도 안 좋고 모자라는 것도 안 좋다는 뜻입니다. 즉, 저축을 하든 어떻게 하든 결산 때는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어야 경영을 잘 한 것이란 뜻입니다.
저는 사제도 그렇게 돈을 쓰고 남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복음에서처럼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옷도 지니지 마라.”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보통 신앙인들에게도 하느님은 씨를 뿌리지도 않는 새를 먹이시고 꽃도 솔로몬보다 더 잘 입히신다는 말씀을 하시며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고 가르치시는데 하물며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하는 사제들이 미래를 걱정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교구사제는 수도자들과는 달리 가난서원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제가 가난서원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가난이 너무 당연한 본질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해 성전을 지날 때 구걸하는 병자를 만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 3,6)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라면 은도 금도 없어야합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줄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상의 비오 성인은 사제이고 가난을 중요시하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로서 가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박물관에 가보면 그분에게 무언가 청하는 수없이 많은 편지들이 한 방 가득히 쌓여있습니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은 돈이 없으셨지만 누구보다도 줄 것이 많은 분이셨던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모습이고 은도 금도 없다던 사도들의 모습이고 지금의 사제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내는 등의 많은 권한을 주십니다. 그 대신 자신들의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미리 준비해 다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에는 하느님의 묘한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제들은 자신들이 받은 것들을 거저 신자들에게 주어야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다보니 먹고 살 것에 대해선 신자들로부터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의 집이든 그를 받아들이는 곳에 가서 머무르라 하십니다.
이는 물질을 도움 받으면서 겸손해 지고 주어진 영적인 권능으로 그들을 도와주라는 뜻입니다. 사랑을 받을 때 겸손해집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받고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어야합니다.
어린이 교리교사를 할 때 느꼈던 것이지만 그 때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들에게서 그 깨끗함이나 순수함을 배우는 것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떤 관계든 올바른 관계는 일방적으로 주거나 받는 것은 없고 다 서로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만약 제가 집을 지니고 있었다면 지금 있는 곳의 수녀님들과의 관계도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저에게 차를 빌려주는 분이나 핸드폰을 빌려주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받고 또 주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제라고 하여 일방적으로 신자들에게 무엇을 해 주는 것만도 아니고 신자들이라고 무엇을 받기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님과 자녀간의 사랑이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확인되듯,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과 신자들과의 관계도 그런 주고받는 관계가 되기를 희망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제가 이미 물질적으로 풍요하다면 신자들에게 도움을 받을 이유가 없을 것이고 도움을 받아도 고마움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께서 서로 성령님을 주고받으심으로써 하나의 관계를 이룩하는 것처럼 사제와 신자들 간의 관계도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줄 것이 반드시 있다고 합니다. 또 받는 것도 사랑입니다. 잘 받을 줄 아는 사람이 잘 줄줄도 압니다. 사제가 가난한 것은 받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겸손이고 그래서 그 빈자리를 남겨 놓아야 하는 것은 사제로 살아가는 사람의 본질입니다. 물질적으로 항상 부족하다면 받을 줄 아는 겸손도 있게 될 것이고 그렇게 받는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받은 것을 주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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