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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월 24일 야곱의 우물- 루카9,7-9 묵상/ 그게 무슨 짓이여 ?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24 조회수456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게 무슨 짓이여?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보려고 하였다.
 
 
 
 
◆ “그게 무슨 짓이여?” 성호를 긋는 내게 아버님이 물으셨다. 그것은 내가 처음 들은 아버님의 나무람 섞인 질문인 동시에 예수님께 대한 최초의 관심표명이기도 했다. 아버님은 대소가는 물론 근동에서 ‘생불’로 통하던 일자무식의 농부이셨다. 말씀도 적고 웃음도 적었지만 그 푸근한 성정에 나는 마음 깊이에서 며느리 아닌 딸이 되어 있었다. 물음에 답을 드릴 수 없었다. 그분의 예수님께 대한 적대감을 충분히 이해했던 것이다.
 
아버님은 큰댁에서 모시던 전신불수인 당신 아버지를 화재로 잃었다. 큰댁 식구 모두 교회에 간 사이에 일어난 불상사였다. ‘예수라는 이가 그렇게 신령하다면….’ 당신 아버지의 횡액을 막아 줬어야 한다는 아버님의 단순하고 요지부동인 논리를 뒤집을 재간이 없었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까지 예수님과 화해하시지 않았지만 성호 긋는 나를 외면하시지도 않았다. 그 참에 용기를 내어 ‘예수님은 사랑’이라고 한마디 했어야 옳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나는 친정·시댁 통틀어 맏이였고 최초의 천주교인 신자였고 타고난 쇠고집이었지만 턱없이 소심했다. 아버님이 타계했을 때 대소가 어른들의 뜻에 따라 유교의식으로 장례를 모시면서도 나는 속으로만 성호를 그었을 뿐이다. ‘나는 이미 전능하신 하느님께 씻긴 몸이다. 지상의 어느 의식을 따른들 시늉일 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 행위가 얼마쯤 교리에 어긋나는지 알음알음했지만 속수무책 아닌가, 크게 가책한 것 같지도 않다.
 
이상한 건 우유부단하게 눈치 보며 몸 사리는 내게 미사 시간을 챙겨주는 이가 한둘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한 건 그즈음에 실로 열렬한 교우가 이웃으로 이사 와 동네에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킨 일이다. 그의 직선적 언행이 너무 당당해서 가끔 거부반응이 있었지만 그는 밀리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든 기도했고 닥치는 일거리에 몸 사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내가 원하던 예언자였다. 그는 내가 하고 싶었지만 용기 없어 못했던 말(예레 1, 10 참조), 미뤄둔 일들을 해치우며 내가 들어야 할 군소리를 내 대신 듣는 것 같았다. 그의 용기가 부럽고 고맙고 미안하기도 했다.

이웃들은 그의 언행일치의 신자다움에 차츰 천주교에 관심을 갖고 세 사람이 세례를 받았다. 시어머님이 대세로 종언하시자 잡음 없이 천주교 상례에 따라 모실 수 있었던 것도 그 교우의 공이 크다. 고인께 송구하게도 모시는 내내 축제 분위기였다. 나는 틈틈이 그 힘찬 교우를 보내주신 분께 감사의 성호를 그었다.
이난호(서울대교구 구로1동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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