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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5주일 깊은 물이 조용히 흐른다....[김웅열 토마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24 조회수1,327 추천수11 반대(0) 신고


 

 

 

               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한주일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도 많은 본당에서 순례피정을 오셨습니다.

미사하고 순례피정을 하기 위해 여기에 오셨을 겁니다.

밖에도 200명쯤 순례하고 계십니다.

감곡본당이지만 순례지라서 전국구 성당이 되어갑니다.

현재는 일년에 약 4만명 정도 다녀가시지만 순례지 선포되는 19일이 지나면더 많은 분들이 오실 겁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오셔서 가끔 그런 말을 하십니다.

“신부님, 충청도에 오니까 신호등도 느리고 말도 느립디다.”

신호등이 느린 건 제가 인정하겠습니다. 참 느립니다...

파란불 기다리다가 새참 한 번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충청북도가 말이 느리다고 하는 것은 동의가 안 됩니다.

충청북도 말은 의외로 짧고 간결합니다.

예를 들어 (돌아가셨습니다.)

표준말: 돌아가셨습니다.

경상도: 운명했다 아입니까~~

전라도: 죽어버렸으라~~

그러나 충청북도 말은 두 글자로 끝내 줍니다.

갔슈~~

얼마나 간단합니까^^


여기 충남 분이 계신지 모르지만 같은 충남, 충남 중에서도 당진 서산 쪽 말이 정말 깁니다.

충남에 가면 칠갑산이라고 있지요..

거기는 고갯길이 대단히 꼬불꼬불해서 추월하기가 대단히 어렵대요.

어느 분이 차를 타고 가는 데 커브 길에서 계속 길이 밀리고 거북이 걸음이야~~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삐집고 삐집고 맨 앞까지 가서

‘어떤 놈이 이렇게 길을 전세내서 가나~~’

하고 가 보았더니 초보운전자더래~~

차 유리창 뒤에 덕지덕지 뭐라고 써 놓았는데~~

(답답하시쥬?)

그 밑에 (저도 죽것슈~~^^)

쌩~~ 하고 추월하면서 도대체 여자가 몰고 나온 거야~~

남자가 몰고 나온 거야~~

안을 들여다보니까 운전대 옆에도 뭐라고 써 붙여 놨어요.

저는 옆두 못 봐유~~^^

아무튼 조그만 땅덩어리에도 이렇게 말이 다양합니다.


지금 우리들은 무슨 성월을 보내고 있습니까?

순교자 성월

여러분, 순교하고 사세요?

순교하십니까?

순교는 지난 주일날 강론 때 육적인 순교와 영적인 순교가 있다고 했지요~~

육적인 순교를 하려면 영적인 훈련을 해야 육적인 순교까지 할 수 있다.

영적인 순교의 제일 첫 단추가 뭐라구요?

입을 다스리는 것이다!

입을 다스린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악습으로부터 벗어나고 그전에는 그렇게 쉽게 화가 나던 것이 화가 나지 않게 되고...그것은 은총입니다.

내가 내 입을 다스리지 못하고 분노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절대 목이 짤리는 순교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한 주 동안...또 하루를 살면서 우리는 순교의 기회를 무수히도 많이 얻습니다.

어쩌면 이 미사 끝나고 집에 가자마자 누군가가 속을 뒤집어 놓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아니면 차를 타고 가는데 뒤에서 깜빡이를 켜면서 자꾸 비키라고 그럴 때 마다 욕부터 튀어나오지요.

그럴 때가 순교해아 되는 순간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연중 25주간 미사를 드리면서 우리는 이 땅에 인간의 욕심과 말째자리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같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도....끝도 없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인간의 욕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생명에 대한 욕심

두 번째가 물질에 대한 욕심

세 번째가 권력에 대한 욕심입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과 권력에 대한 욕심의 궁극적인 목적은 역시 생명에 대한 욕심에 직결이 됩니다.

자기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또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이런 욕심을 갖습니다.

물론 욕심 자체는 나쁜 건 아니지만 이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고 조절하지 못하면 오늘 2독서에 나오는 대로 시기와 질투와 온갖 쓰레기 같은 냄새가 나는 삶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의 모습이 어땠습니까?

그리스도를 삼년동안 모시고 다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기적을 눈으로 보았던 제자들이었으며 예수님의 숨결을 느꼈던 그 제자들이 자리다툼을 하다가 예수님에게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나는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할거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도 제자들의 머릿속에는

‘저 양반이 왕이 되면 분명히 장관자리 하나는 맡을 거야...이왕이면 힘이 있는 첫째 자리를 차지해야지~~’

하면서 땅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이 자리에 사제의 강론을 들으면서도 딴 생각을 하고 계신 분들은 부디 강론 속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는 것은 본능적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짧은 권세를 누리기 위해서 독재자들이 얼마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몸부림을 쳤습니까?


사실은 정치세계에서만 아니라 가정 안에서도 기득권 싸움은 있습니다.

아이들 서넛을 기르다 보면 그 아이들 사이에서도 기득권 싸움이 있습니다.

동생들이 어렸을 때는 형의 시중을 들었지만 덩치가 커져서 언니와 비슷해지면 절대로 밀리지 않습니다.

대개는 동생이 언니를 밟으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이 몇 식구 안 되는 작은 가정 안에서도 내가 지려고 하지 않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고 손해 보려고 하지 않는 이런 기득권 싸움은 치열합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우리 교회 안에서도 기득권을 얻으려는 보이지 않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간부나 회장으로 있다가 직책에서 물러나면 정말 겸손 되게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 보면 참 존경스럽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직책을 맡았었다고 하는 이유 때문에 그 자리에 대한 욕심 때문에 감투싸움을 하는 경우를 보면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제가 어느 본당에 부임을 했을 때 그 본당에 간부들 가운데 장기집권을 하는 간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꾸리야 단장을 무려 10년이 넘게 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 성당에는 꾸리야 단장 할 사람이 그렇게 없나!’

“자매님, 10년 동안 했으니까 그 자리를 내놓으시오!”

했더니 그 자매 내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면서

“신부님, 그렇게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동안 십자가가 컸었는데 이렇게 십자가 벗겨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고마움을 표시하고 그 자리를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레지오 강복을 들어 가보면 사람들이 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왜 안 보이냐?”

“휴가입니다....쉬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나중에 들려오는 소문을 들어보니 꾸리야 단장이 자기 대녀들을 다 레지오에서 끄집어 내어가지고 자기 집에서 따로 기도회를 하고 앉았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새로 온 본당신부가 인물을 몰라 봐 가지고 자기를 짤랐다...나 없이 성당 유지되나 봐라~~’

이렇게 떠벌리고 다녔다는 겁니다.

그 소리를 듣고 저는 즉시 조직을 풀어 조직의 쓴 맛을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분들 아시다시피 사제의 조직은 그 유명한 비둘기파입니다!

성령 파!

그렇게 교만이 뻗치니까 사제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성령이 그 사람을 쳤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신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지가 찾아오게끔 성령이 역사를 합디다.

지금은 겸손 된 마음으로 열심히 잘 삽니다.


본당에 간부라고 하는 직책은 내가 마땅히 있을 만하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너무 부족하고 모자라기에 주님께서 사람 만들어 주시려고~~

안간 만들어 주시려고~~

그 자리에 앉혀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늘 겸손하게 살아야 됩니다.


제가 자주 하는 얘기중의 하나, 이건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비싼 땅이 되어야 하고...귀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가 비싼 땅이 되려면 제일 첫 번째가 뭐라고 했습니까?

많이 밟혀야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밟고 다닐수록 비싼 땅입니다.

영적으로 비싼 영혼이 되려면 신자들에게 밟히기도 해야 합니다.

특별히 성당의 봉사자들.... 간부들은 밟혀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다보면 별것도 아닌 인간이 나를 밟으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지가 나보다 잘난 것도 없는데 나를 밟으려고 하고 자존심을 깔아 뭉길 때가 있습니다.

밟히십시오!

하느님의 일을 하다 밟히는데 그게 무슨 수치입니까?

밟으라고 머리를 들이미십시오.

영적으로 비싼 영혼이 되려면 그런 것 각오해야 됩니다.

 


귀한 열매가 맺는 땅은 어떤 땅입니까?

거름이 좋아야 됩니다.

아무리 거름이 좋아도 사람이 직접 그것을 먹지는 못합니다.

그 거름이 땅에 들어가서 땅을 썩혀야만 귀한 열매가 맺습니다.

영적으로 귀한 열매를 맺으려면 더러운 것 많이 받아들이고 살아야 됩니다.

어떤 때 본당 안에서 활동을 하다보면

저 사람이 내 얼굴에 침만 안 뱉을 뿐이지~~

침 뱉는 것보다 더한 모욕을 줄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싫컷 뱉으라고 하십시오.

내가 더러운 것 끌어들여야만 나는 귀한 열매 맺는다고 이것이 바로 주님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첫 말씀 중에 비싼 열매, 귀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오늘 예수님의 표현대로 하면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말째가 되어야 하고 또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50년 전에는 전자레인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500년 전에도 있었고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역사에 소위 문화생활을 하면서 있었던 것은 걸레입니다.

여러분 집에 지금도 걸레가 있을 겁니다.

물론 30년 전의 걸레와 지금의 걸레는 종류가 다르지요?

30년 전에는 그냥 뭐 속옷 같은 거나 내복 짜른 걸로 썼지만 지금은 걸레용~~ 이렇게 해서 따로 나옵니다.

예전의 걸레나 지금의 걸레나 걸레의 존재 이유는 뭡니까?

더러운 것 닦아주는 데 있습니다.

걸레를 쓰고 난 다음에 선반 안에 찬장 속에 넣어 잘 모셔 놓은 집 없습니다.

걸레를 쓰고 나면 내던집니다.

걸레가 벽에 부딪히면서 소리 지르는 것 봤습니까?

너 나 왜 함부로 대해!

걸레는 그저 자기 한 몸을 닦아 준 것으로 행복해 할 뿐입니다.

빗자루가 비질하고 아무데나 내던진다고 빗자루가 비명 지르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큰 걸레입니다.

이 세상의 더러운 죄 당신의 보혈로 다 닦아 주시고~~

누구보다도 할 말이 많지만 그저 묵묵히 죽음을 받아들이셨던 큰 걸레입니다.

우리도 작은 걸레로 살아가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말째가 되는 길이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일입니다.

말째가 되는 것은 남을 섬기는 일입니다.

말째가 되고 귀한 땅이 되고 비싼 열매를 맺으려면 다시 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들어 올려 주시게 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영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기도 봉사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몸 봉사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물질 봉사가 필요합니다.


기도 봉사와 몸 봉사  물질의 봉사....  이 세 가지는 훈련을 쌓아야만 우리는 낮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제일 첫 번째 단추는 기도 봉사입니다.

기도해야만 기도로부터 하느님이 내 영혼을 적시고 나를 적신 물이 흘러 넘쳐서 기쁨 가운데 이웃을 도와주는 몸 봉사와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되돌려드리는 물질봉사를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몸 봉사도 이루어지지 않고 하느님께 늘 찌끄러기를 내면서 그것도 아까워합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것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면 단 100원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성서 말씀에 심는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순교자들이 생명을 심었기에 영생을 얻었습니다.

외아들을 신학교에 보냈기에 그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사제의 부모라고 하는 칭호 속에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열매가 없습니다.

매일같이 하느님 앞에 찾아오고 묵주가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데 몸 봉사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물질 봉사에도 인색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건 뭔가 기도가 잘못된 겁니다.


기도를 하면 저절로 하느님의 집을 아름답게 가꾸고 눈에 보이는 풀이라도 뽑으려고 하는 마음이 생겨야 합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뭔가 정성어린 물질 봉헌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물질봉사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몸 봉사라도 해야 됩니다.

나는 이 세상에 나는 물질봉사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는 사람은 존재할래야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가난한 과부 이야기 아시죠?

가난한 과부는 그날 저녁 먹을 것을 포기하고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그 가난한 과부의 그 동전 한 닢을 보고

<이 사람은 자기 모든 것을 바쳤다!> 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거드름을 떨면서...물론 과부가 낸 그 한 닢보다는 열배 이상 냈지만...예수님은 거드름 피우는 그 돈을 보지 않고 과부의 돈을 칭찬하셨습니다.

그 과부가 그날 저녁 양식 살 돈을 바쳤다고 그런다면 그날 그 과부의 저녁을 굶겼겠습니까!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얼마든지 먹여 살리셨을 겁니다.


집에서도 매일 눈만 뜨면 일 하는데 성당에 와서도 무슨 몸 봉사를 해야 됩니까?

아니죠~~

하느님이 계실 집을 내 집보다 더 귀하게 여겨야 됩니다.

내 집 마당이 더러우면 내가 비 들고 쓸듯이... 내 집 마당에 풀이 나면 내가 뽑듯이....

내 집을 귀하게 여기는 것 수십 배 이상 하느님 집을 더 귀하게 여기고 봉사해야 됩니다.


기도 봉사와 몸 봉사와 물질 봉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바로 하느님께서 들어 올려 주시는 사람입니다.


물은 높은 산일수록 좁은 계곡을 타고 내려올수록~~


골짜기를 타고 내려올수록 소리가 요란합니다.

그리고 높은 산에 있는 개울가에 있는 돌들은 날카롭고 끝이 뾰족합니다.

그러나 그 돌들이 구르고 굴러서....둥글어지고...

물은 밑으로 내려올수록 조용해지며 강을 이루어 바다로 내려가면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이제 낮아질 대로 낮아졌을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햇빛이 그 물을 하늘로 들어 올려주는 증발이 일어납니다..

낮아졌을 때는 하느님께서 들어 높여 올려주십니다.

물론 사람이 낮아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는 각자가 절감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신앙은 자기의 본능을 이기는 겁니다.

본능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바로 신앙임을 명심하고 오늘 우리는 이 미사 중에 성령의 갑옷을 청합시다.


미사 중에 내리는 성령의 은총과 샘물을 마음껏 마시고 한 주일을 열심히 살아가도록 합시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ㅡ2006. 09. 24 연중 제 25주일 가르침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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