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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종교인과 그리스도인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24 조회수557 추천수3 반대(0) 신고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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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종교인과 그리스도인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리스도인이 아닌 종교인이 되기 쉽습니다.
늘 깨어 근신하며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종교인은 눈에 보이는 것을 좇아갑니다. 더 큰 건물, 더 많은 사람들, 돈과 부귀 영화, 유명세를 추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합니다.

종교인은 이 세상의 것에 목숨을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것에 목숨을 겁니다.

종교인은 롯처럼 눈에 보이는 풍요를 선택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아브라함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느님의 뜻과 길을 늘 신뢰하고 선택합니다.

종교인은 기복신앙을 갖고 있어 언제나 합격과 성공, 축복을 기원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시편 1편의 복과 마태5, 3-1절의 팔복 신앙을 갖고 있어 언제나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를 간구합니다.

종교인은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은 제외한 채, 하느님이 더 큰 물질을 주시고 성공하게 해주셔야지만 주신 그 물질로 주님의 일을 잘 할수 있다고 단서를 달면서 자신의 기복신앙과 세상에 속한 욕심을 합리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아이처럼 자신이 가진 것부터 드리고 나누는 자입니다. 그럴 때 하느님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종교인은 기아, 난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늘 부족하다고 하느님께 요구하고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자기가 가진 것을 족하게 여깁니다.

종교인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미워하며 날마다 자아를 십자가에 넘깁니다.
사도 바오로처럼 "나는 매일 죽노라"고 고백하는 자입니다.

종교는 남을 이용하여 자신의 성(바벨론城)을 쌓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도는 남을 돕기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종교인은 율법을 중요시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중요시합니다.
종교인은 형식과 체면을 중요시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내용과 본질을 중요시합니다.
종교인은 겉모양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마음에 숨은 동기와 하느님의 공의로 분별하려 합니다.

종교인들은 날과 절기에 목숨을 걸고 집착합니다. 그것만 지키면 하느님 앞에서 자기 할 일이 끝났다는 듯이 주변사람들의 상처에 개의치않고 당당히 외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날, 모든 재물이 다 주님의 것이라고 믿고 고백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의(義)와 인(仁)과 신(信)의 청지기로 삽니다.

종교인은 버림받은 사울왕이나, 저주받은 바리사이들처럼 사람의 영광이나 칭송을 사모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영광이나 칭찬에 얽매이지 않으며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사모하며 갈구합니다.

종교인은 사람의 눈치와 체면을 따라 행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어린양이 인도하시는데로 행합니다.

종교는 종교지도자가 우두머리가 되는 피라미드식 구조이지만
그리스도인의 도는 지도자가 종이 되는 역피라미드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속는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종교성에 충만한 자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많은 권능을 행한다는 사실입니다.(마태 7, 22)  사탄의 역사를 따라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이 나타날 때 분별력이 없는 무수한 신자들이 사탄의 기적을  하느님의 기적이라고 굳게 믿어버립니다.

사탄의 역사는 항상 사람을 높이지만
하느님의 역사는 항상 사람을 낮추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탄이 역사하는 신자들의 마음은 언제나 높은 곳에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최고이고 그들 주장이 유일한 진리라고 하지만
하느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겸손하며, 배우고 분별하려고 애씁니다.

종교인이 보여주는 능력과 표적과 많은 권능으로 구름 떼같은 사람을 모아 번성할 수 있겠지만, 그 결과는 황당하게도 밖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입니다.

종교의 도가 음녀(창녀)의 도라면
그리스도인의 도는 신부의 도입니다.
쭉정이인지 알곡인지 육안으로 봐서는 알 수 없듯
창녀와 신부 역시, 겉모습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복음을 이용하여 나의 유익을 구했다면 창녀요,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위하여 나를 버렸다면 신부입니다.

음녀에게는 심판이
신부에게는 신랑이 기다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9월 25일] 생명의 말씀 '복음'  
<루카 9,18-22>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9월 25일,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신앙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구세주라고 믿습니다. 그런 믿음을 지녔기에 순교자들은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주님께서는 침묵을 명하십니다. 당신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 하게 하셨습니다. 아직은 수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고난 받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 참메시아가 되십니다. 구세주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런데 역사에는 스스로 메시아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자신을 살아 있는 구세주라고 당당하게 외친 사람들입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너무 다릅니다. 그러기에 분열만 일으키다 사라졌습니다.

십자가를 외면하면 메시아가 아닙니다. 고통과 수난을 피하려 들면 영적 지도자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끌어 주셨기에 변화가 온 것입니다. 언제라도 은총이 답인 것이지요. 사람은 다만 도구일 뿐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스피커’일 뿐입니다. 이를 잊어버리기에 자만에 빠집니다. 메시아 대접을 받으려 합니다.

‘죽지 않으면’ 메시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훗날 제자들은 깨닫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희생하고 침묵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습니다. 주님께서는 천상의 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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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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