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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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순 | 작성일2009-09-27 | 조회수1,11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 26주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그때에 38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4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42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지난주에는 4박5일간 서남해안의 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목포에서 145km 떨어진 가거도를 주 목적지로 정하고 흑산도와 홍도 그리고 신안군에 속한 5개 섬도 다녀왔습니다. 가거도는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4시간이 소요되는 서남해안의 극점인 자그마한 섬으로 주민 수는 대략 450여명 정도이고 목포에서 일 1회 운항하며 흑산도에서도 2시간 20분 정도 더 가야 했습니다. 목포에서 제주도까지의 배 삯은 49,000원 정도였으나 가거도까지는 55,800원이므로 비교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거도 몽돌해변에서)
(흑산도 성당에서)
................. 오늘 복음을 묵독하며 떠오르는 생각은 어제 귀경길에 고속도로에서 대형 사고를 순간적으로 모면한 아찔한 기억이 다시 떠오릅니다. 오늘 묵상은 편의상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하신 말씀부터 묵상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어제 기억 때문에, 죄송한 생각이지만 '죽으려면 혼자나 죽지, 왜 엉뚱한 사람을 죽이려고 하느냐'는 뜻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어제 목포에서 오전 9시경 귀경길에 올랐습니다. 목포에서 광주를 거쳐 호남고속도로 구간인 논산-천안 민자 고속도로 구간을 조금 앞둔 지점에서, 20년이 넘는 운전 경험 중에서 가장 아찔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토요일 오전이라 차량통행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2차선에서 규정 속도를 지켜가며 안전운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에 가는 승용차의 모습이 위태위태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러다 사고 나지'하며 일행(형님 내외분과 집사람)에게 두세 번 얘기하고 가뜩 신경을 썼습니다. 졸음운전이 아니면 음주운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추월선으로 차선을 바꿨습니다. 추월선에서 경고음을 울려서 졸음운전이면 경각심을 심어주려고 했습니다. 추월선으로 진입하였으나 코너구간이라 가속을 하지 못하여 문제의 차량과 10여m 떨어진 추월선에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의 차량이 우측 공사구간의 가드레일을 들이박고 그 충격으로 추월선으로 튕겨 나와 빙그르 돌고 있었습니다. 순간 급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이미 늦었다고 직감하고 중앙분리대 쪽으로 차를 최대한 붙이고 모든 것은 하느님께 맞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중앙분리대로 최대한 차를 붙인 덕분에 아주 위험한 순간을 모면하고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 차의 운전수 쪽 밤바 또는 문짝이 중앙분리대에 받쳤을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충돌한 느낌을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을 무사히 빠져나오며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죽으려면 혼자나 죽지, 왜 엉뚱한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지'...백미러로 확인해보니 차량 통행이 뜸하여 연쇄추돌사고는 발생하지 않고 있었으나 사고 차는 충돌의 충격으로 펑크가 나서 그것도 공사구간이라 갓길도 없는 고속도로에 그대로 방치해 있으므로 여간 걱정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수님 당시에는 메시아로 사칭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같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요한 사도가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하고 말한 점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스승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도 "마귀를 쫒아내는" 기적을 행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스승님의 이름으로"가 의미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사칭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은 사칭할 수는 있으나 마귀를 쫒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스승님의 이름으로" 즉 "내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참'이며 '진리'라는 의미이고 '참'과 '진리'는 그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뜻에서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하신 것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우리 신앙에서 말하는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꼭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도, 우리 교회를 통하지 않고서도 진리의 삶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신앙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런 신앙관은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이제는 재고되어야 할 것입니다. 혹자는 이런 생각을 종교다원주의입장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오해를 하려면 더 확실하게 오해를 하였으면 합니다. 진리의 삶을 실천한다면 타종교인은 물론 무종교인들도 충분히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으로 오해를 하였으면 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하신 말씀은 지금의 그리스도 교인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진리의 삶을 실천하며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말씀하신 것으로, 즉 마하트마 간디나 링컨대통령과 같은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말씀하고 계시며 그분들을 추앙하고 그분들의 삶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을 지칭하여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로 말씀하신 것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가 아닌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는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지만 그 행위를 하는 것은 손이 하고, 발이 하고, 눈이 하고 있습니다. 손과 발과 눈은 두개씩 있으므로 차라리 하나를 버리라고 하셨지만 하나밖에 없는 입은 버릴 수도 없으므로 오늘 복음에서는 빠져있지만 우리가 정말 조심할 것은 손발과 눈뿐만 아니라 입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하여 입에 대하여는 따로 말씀하셨으며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바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마태15,18)하신 말씀을 오늘 말씀과 함께 기억하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지옥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길거리에서 전도하는 일부 광신적인 개신교 신자들만 생각하였으나 이번 여행길에서 목격한 사실로 안좌도 어느 마을의 교회 간판에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순박한 섬사람들에게 이런 의식을 심어주는 그 모습을 보며 이런 구업을 장차 어떻게 씻을 수 있을지,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그 숭고한 뜻이 고작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란 말인가? 오늘 묵상은 1주일 만에 재개하는 묵상이라 새로운 기분으로 묵상하려고 하였지만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니체의 독백이 비단 니체만의 독백이 아니므로 미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심정을 헤아려보며 오늘 묵상을 마치겠습니다. 【즐거운 학문: 1882년. NO 125. 광인-'신은 죽었다'의 마지막 글에서】 소문에 의하면 그 광인은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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