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믿음의 눈으로/믿음-하느님과의 결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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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09-09-28 | 조회수44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1세는 언젠가 유명한 천문학자 피에르 라플라스에게 천체도를 실제와 똑같이 그려오라고 명했다. 라플라스가 완성된 천체도를 황제에게 가져 가자 나폴레옹 황제가 물었다. "그런데 하느님은 어디 계신가?" 과학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을 설명하는 데는 그러한 가설은 필요 없습니다." 하느님은 라플라스의 그림에 존재하지 않았다. 즉, 하느님은 내 그림에서는 얼마나 차지하고 계실까? 실제와 똑같이 그림을 그린다면, 나에게 중요한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들을 그 중요도와 의미의 크고 작음에 따라 크고 작은 원으로 표시를 한다면, 하느님의 원은 과연 얼마나 클까? 결국 믿음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믿음만이 하느님을 그림 속에 집어 넣을 수 있고, 내 믿음의 크기가 하느님의 원의 크기를 결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을 가지고 행동할 때면 언제나 모든 사랑의 관계는 믿음의 행위에서 시작되고 믿음 위에서 성립된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당신에게 그렇게 하도록 요구할 수도 없다. 당신의 말뿐이다. 나는 사랑한다는 당신의 말을 이것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와 비슷하다. 하느님은 대사제들과「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우리에 관해서, 그리고 우리의 인생과 세상에 관해서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말씀은 간단히 요약한 다음과 같은 진리이다. 즉,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비록 어머니가 자기 뱃속에 있는 나는 결코 너희를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영원무궁한 옛날부터 … 그것이 내가 너희를 창조한 이유이다… 나는 너희 없이 세상을 없는 세상은 나에게는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생애, 즉 죽음 그리고 부활 밑에 붙어 있는 설명문은 다음과 같다. "이것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고 말했을 때, 내가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복음'이라는 말은 '기쁜 소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의 복음은 우리에게 진실로 '기쁜 소식'을 가져다 준다. 즉, 하느님의 영원하고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한 기쁜 소식, 우리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형제자매라는 기쁜 소식, 그것은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고 너무 힘이 들어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좋아서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모든 사랑의 관계는 믿음의 행위에서 비롯하고 그 위에 세워져 있다. 따라서 믿음은 정말로 하느님과의 결합인 것이다. 믿는 힘은 그 자체가 하느님의 선물이다. 여러 세기를 통해서 나에게까지 전해진 하느님과 하느님의 말씀은 내 이해의 암흑을 비춰 주는 광명이고, 내 손을 잡아 주는 든든한 손이고, 고독한 내 얼굴을 어루만져 주는 사랑의 손길이다. 하느님만이 신자를 만들 수 있다. 하느님만이 나를 진리와 평화의 순간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이 선물을 내가 거부할 수 있다거나, 그 선물을 제대로 써 먹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겁난다. 동시에 하느님의 원이 나의 세상 그림 전체를 차지하게 될 때까지 더욱더 많이 하느님의 은총을 향해 마음을 열고, 더욱더 깊이 "저는 믿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할 수 없이 흥분된다. 「믿음의 눈으로」 존 파웰 지음 / 정성호 옮김 / 성바오로 펴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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