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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사람이 쓴 글은 읽는 이들의 마음조차 맑게 한다. 문체가 유려하다거나 수사가 절묘하지 않더라도 소박하나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글과 만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이런 글을 두고 잘 쓴 글이라 해야 할 듯한데 세상 사람들의 평은 이런 책들에 인색하다. 서글픈 현실!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는 맑은 글이다.
저자, 임길택. 책날개를 보니 그는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났다. 목포교육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1976년부터 강원도 탄광마을과 산골마을에서 열네 해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고, 1990년부터는 경상남도 거창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1997년 4월에 폐암선고를 받고 요양하다 그 해 12월에 마흔 여섯 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몇 권의 시집과 동화집을 세상에 남겼다.
일찍이 윤동주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고 노래했던가. 크고 강한 것들이 아니라 보잘것없고 여린 것들에 대해 안쓰럽게 던지는 연민의 마음이 시인의 마음이라면, 빼고 더할 것 없이 임길택은 시인이었다.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아직 시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그 우는 것들의 동무가 되어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라는 것이 책을 쓴 저자의 마음이다.
강한 자는 울지 않는다. 우는 것들은 약하다. 아이들 역시 약해서 운다. 임길택은 우는 아이 곁으로 다가가 울고 있는 사연을 묻는 사람이다. 그 우는 아이가 풀어내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이야기가 바로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이다. 영심이, 금주, 혜숙이, 가난한 산골마을의 어린아이들에게는 저마다의 아픈 사연이 있다.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 아이들의 우는 소리를 듣고 기록한 그의 글은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몸에서 지린내가 나는 아이들, 머리도 감지 않아 부수수한 아이들, 이를 잘 닦지 않아 누레진 이에 까만 점무늬가 박힌 아이들, 못난 얼굴에 군살이 두둑하게 붙어 있는 아이들의 등을 토닥여주며, 그 아이의 맘 속 깊이 흐르는 기쁨의 감정을 저자는 섬세하게 짚어낸다. 작고 가녀린 존재들에게 주는 시선의 그윽함이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싶다.
그를 가르친 건 오히려 아이들이었다
임길택, 그는 선생이었지만 그를 가르친 건 오히려 아이들이었다. 그가 가르쳤던 ‘영근’이 이야기는 그가 어떻게 아이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는가를 전한다. 사정은 이랬다. 영근이는 같은 반 아이들과 어울려 들판을 쏘다니거나 해가 지도록 축구를 하거나 하는 보통 아이였다. 늘 말이 없고 어쩌다 길거리에서 만나도 씩 웃고만 도망치듯 달아나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산에 약을 놓아 잡는 사냥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교사 임길택은 어느 하루, 약 놓은 데로 자길 데려가 달라고 영근이에 부탁을 한다. 그곳에서 영근이는 선생에게 토끼가 지나간 자국을 일러 주고, 죽은 새를 가리키며 죽은 시간이 오래된 것일수록 날개가 뻣뻣하고 눈 감긴 정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임길택은 그런 영근이의 등을 토닥거려 준다. “영근아, 교실에서는 내가 선생이지만, 들에서는 니가 선생이다. 봐라, 사람마다 자기가 잘 하는 것이 분명히 있단다.” 가르치는 자가 가르침을 받는 자보다 나을 게 없다는 그의 겸손이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런가. 세상의 지식에는 분명 서열이 있게 마련. 농부들의 풀피리보다야 플롯이나 트럼펫이 부가가치가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수학을 배우고 피아노를 배우고 컴퓨터를 배우려고 안달이다.
“그리고 시간 많은 도회지 엄마들처럼 아이들의 손을 붙들어 놀아 줄 시간이란 당최 상상해볼 수 없는 일이므로, 아이들은 걸음마만 떼면 어른들의 손에서 자연스레 벗어나 저희들끼리 무리를 이루고 시시각각으로 놀 곳과 놀이를 바꾸면서 온 마을과 들판을 헤매고 다닐 수밖에 없다. 태권도를 배우러 다니지 않아도, 컴퓨터나 천재학습을 하러 다니지 않아도, 유아원이나 유치원이 무엇 하는 곳인 줄은 전혀 몰라도,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도회지 아이들보다 더 지치기 일쑤고 밥숟갈을 빼기가 무섭게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만다. 그래서 비록 교과서에 나오는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배우는 데는 더딜지라도, 산에 오르면 금방 더덕 내를 맡을 줄 알고, 들판의 씀바귀와 고들빼기를 쉽게 가려낼 줄 알면서, 뚜꾸와 모래무지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선생인 나보다 더 잘 안다. 교실 안에서는 그리 쓸모 없을 듯 보이는 그들에게 점수 따는 공부말고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것들은 대체 무엇일까?”
대체 내가 가르치는 지식이 아이들의 지식보다 어떻게 우월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임길택의 이런 자의식은 그가 천성적으로 겸손한 인간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는 그의 긍정적인 성격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지 않는다.
대체 내가 가르치는 지식이 아이들의 지식보다 어떻게 우월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임길택의 이런 자의식은 그가 천성적으로 겸손한 인간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는 그의 긍정적인 성격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지 않는다.
고백-아버지
수업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에게 책을 던지고 뺨을 때렸다는 이야기, 체육시간에 배드민턴을 내던지고 돌아선 아이를 좇아가 아이에게 발길질을 해댄 이야기는 과연 ‘임길택’이라는 사람이 교사로서의 자질이 충분한가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기까지 한다. 그러나 교사도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이 책은 그의 인간적 결점까지를 모두 덮어버리고 ‘임길택’이라는 자연인을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의도로 씌어진 책은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의 교사, 임길택의 면모를 가감없이 드러내주는 기록일 뿐이다.
가난한 집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임길택이 풀어놓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가슴을 죄어든다. 아버지를 무시하기도 하고, 어서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질 때도 있어서인지, 아버지의 죽음이 그리 실감나지 않았다고 임길택은 고백하고 있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아버지를 가깝게 느끼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대목에서 그는 그의 속내를 들키고 있다.
“처음으로 동해안이 있는 온천을 찾아갔을 때에, 나는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온천물을 아버지 몸에 끼얹으면서 등을 밀어 드릴 수 있었으면 하고 안타까워했다. 그 따뜻한 물 속에서는 금방이라도 굽어들었던 아버지의 등이 펴질 것만 같았고, 그르렁대던 가쁜 숨소리조차 멎을 것만 같았다. 그 환상은 돌아오던 버스 속에서도 내 머리를 떠날 줄을 몰랐다.”
“꽉꽉”, “꽈르르꽈르르”, “굴개굴개”
이 책은 우리들에게 실체를 보라고 말한다. 책에 써 있는 지식에만 의존하지 말고 실제와 만나라고 말한다.(물론 책에 있는 지식을 버리라는 말은 아니다.)
“어느 한가한 초저녁, 두 아이들을 데리고 마당가에 나와 개구리들이 어떻게 우는지 잘 들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맏이 울밑이 “개굴개굴”이라고 대뜸 받았다. 짐작한 대로였다. 그래서 나는, 그 소리는 책을 쓴 아저씨가 들은 개구리 소리이고, 너희들은 너희들 귀로 잘 들은 뒤에 말하라고 했더니, “꽉꽉”, “꽈르르꽈르르”, “굴개굴개”하면서 수도 없이 찾아냈다. 나는 잘 찾았다면서 등을 두드려 주고,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걸 자기 귀로 듣고 자기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현실의 아이들은 어떤가. 방과 후가 되면 피아노, 영어, 컴퓨터 학원으로 뿔뿔이 흩어져 가는 아이들에게 자기 눈으로 듣고 자기 눈으로 볼 시간이 주어지기나 하는 것일까. 우리 시대의 커리큘럼은 그들의 눈과 귀에 실체의 생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도록 기획된 것일까.
우리의 눈과 귀는 이미지의 세례 속에 무차별하게 열려 있다. 컴퓨터만 켜면 온갖 화려한 이미지들이 출몰한다. 엠피쓰리는 언제라도 내 청각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보아야 할 것들은 무엇이고, 우리가 들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이 책은 우리가 빠뜨리고 있는 그 무엇을 생각하게 한다.
책 서두의 추천하는 말에서 ‘자극이 강하고 현란한 글들에 익은 사람들이 잘 삭은 배추 김치 같이 담백한 이 글들을 얼마나 잘 읽어낼지’ 의문이라고 윤구병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낯선 곳에 가면 일부러 허름한 식당을 찾아, 제 돈 내고 밥 사먹으면서도 마음 속으로 꾸벅 절을 했다는 그의 여리고 착한 심성에 도리질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김보일 (서울 배문 고등학교에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기도 한 그는 다양한 독서 편력을 바탕으로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 2-과학편』, 『책꽂이 속에 숨어 있는 논술(공저)』, 『국어 선생님의 과학으로 세상 읽기』 『나는 상식이 불편하다』 등의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한국출판인회의 ‘이 달의 책’ 선정 위원을 지낸 바 있으며, 청소년출판협의회 자문위원 등 책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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