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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손님들" - 9.30,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30 조회수399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9.30 수요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345-420) 기념일        
                                                                                                  
느헤2,1-8 루카9,57-62
                                                          
 
 
 
 
 
 
 
 
"하느님의 손님들"
 
 
 


수도승의 환대에 대한 글을 읽다가 새삼 깨달은 사실입니다.
 
수도원을 찾는 손님들뿐 아니라
이미 하느님이 주인이신 하느님의 집, 수도원에 살고 있는 수도승들도
넓은 의미로는 잠시 머물러 있다가는 손님들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수도승들뿐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손님들입니다.
 
모두 잠시 지상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들일 뿐입니다.
 
하여 성경은 물론 수도 전통에서 한결같이 강조하는 게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하라는 환대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후회 없이, 보람 있게
‘하느님의 손님’으로 잘 살 수 있을까요?


첫째, 하느님의 나라 안에 정주하는 삶입니다.

하느님의 나라 안에 정주한다는 말,
하느님 안에, 그리스도 안에 정주한다는 말로 바꿔도 무방합니다.
 
하느님 안에, 그리스도 안에 정주하여 믿음의 뿌리를 내릴 때
방황하지 않습니다.
두려움과 불안도 사라집니다.
 
어느 보이는 특정 장소에 정주하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우리 삶의 중심인 하느님 안에 정주하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의 예수님이 그 모범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 초차 없다.”

예수님은 겉으로야 한 곳에 정주함이 없이 끊임없이 방황한 것 같지만
하느님 안에 정주하셨기에 자유로이 정력적으로 활동하셨고,
밤에는 홀로 기도하시며 하느님 안에 정주를 확고히 하셨습니다.
 
하여 하느님 안에 정주를 확고히 하기 위해
끊임없는 기도와 성경묵상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라는
성 예로니모의 말씀처럼,
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 안에 정주도 힘들어지기 마련입니다.
 
1독서의 느헤미야를 보십시오.
 
그는 유배지 페르시아에서도 끊임없이 기도하며
하느님 안에 정주하였기에 마침내 그의 기도는 하느님께 상달되어,
임금은 그가 고향의 무너진 도성을 재건하도록 허락하지 않습니까?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의 겸손하고도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내 하느님의 너그러우신 손길이 나를 보살펴 주셨으므로,
  임금님께서는 내 청을 들어주셨다.”

둘째,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는 삶입니다.

이게 우리 삶의 목표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일에 영광 받으소서.’라는 분도 성인의 말씀처럼
온전히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전 존재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보다
더 좋은 복음 선포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도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라.’는
과격한 말씀에 초점이 있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라.’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충격 요법의 표현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닫게 하십니다.
 
세상의 부수적인 것들에 마음을 뺏겨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는 본질적인 복음 선포의 사명을
잃지 않기 위함입니다.
미사 없이, 하느님 없이 무슨 맛으로, 무슨 기쁨으로 세상을 살겠습니까?
 
주님은 이 거룩한 매일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미사 후 파견 시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라는 주님의 명령을 듣고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기 위해 세상에 파견됩니다.

셋째, 하느님의 나라에 합당한 삶입니다.

하느님이냐 세상이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하느님을 우선한 삶이 하느님께 합당한 삶입니다.
 
이래서 ‘기도하고 일하라.’는 분도회의 모토입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가족들에게 먼저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달라는 자에 대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시간이든, 정력이든, 돈이든
먼저 하느님의 것부터 챙기고 나머지를 써야지
이것저것 할 것 다하고 하느님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주님을 따라 앞만 보고 가야지
미련이 남아, 이런 저런 세상 것들에 대한 집착으로
자주 뒤를 돌아다보면 참 살기 힘들어집니다.
 
정작 힘든 것은 몸이 약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갈릴 때입니다.
 
한발은 하느님께, 한 발은 세상에 양다리 걸치고 살 때입니다.
 
하느님을 우선하여 말 그대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때
하느님께 합당한 단순하고 검소한 질서 잡힌 삶입니다.
 
매사 하느님의 눈으로, 하느님의 마음으로 분별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손님들입니다.
 
하느님 안에 정주할 때,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는 삶일 때,
하느님의 나라에 합당한 삶일 때 비로소 보람 있고 행복한 삶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당신의 지상 손님들인 우리 모두를 환대해 주시며
당신의 말씀과 성체로 위로와 힘을 주십니다.

“주 하느님, 당신의 말씀을 찾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나이다.”
(예레15,16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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