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회적 입맛 - 윤경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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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경재 | 작성일2009-10-01 | 조회수393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사회적 입맛 - 윤경재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사람입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태18,1-5)
사람이 나이 들어가면서 신체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많습니다. 시력도 약해져 노안이 옵니다. 그래서 작은 글씨는 제대로 읽지 못합니다. 귀도 어두워져 작은 소리를 못 듣습니다. 입맛 기능도 퇴화하여 음식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짠맛과 단맛을 느끼는 기능이 두드러지게 약해져 나이 먹을수록 음식을 짜게 먹고 달게 먹습니다. 어릴 적에 맛있게 먹던 추억 어린 음식이 그리워 고향 음식점에라도 찾아가보면 안타깝게도 예전의 맛이 아니라서 실망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서는 ‘이 집이 돈 좀 벌었나 보지? 예전에 먹던 그 맛이 아냐. 음식재료를 엉망으로 썼군.’라고 엄한 말을 합니다. 실제로는 자신의 입맛이 변한 줄도 모르고 식당 주인 탓만 합니다. 이런 사정 탓으로 식당 주인들은 점점 맛을 강하게 조리합니다. 그래선지 요즘 외식을 하면 단맛과 짠맛이 점점 강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매운맛도 유행처럼 번져 한국 음식이 온통 시뻘겋게 변했습니다. 심심한 맛을 내는 음식점을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나이 든 사람이 음식 맛을 잃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나이 들수록 대부분 식사 시간에 혼자 외롭게 음식을 먹게 됩니다. 직장에서 퇴직하고, 사회활동은 줄어들고,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수입은 적어지니 여럿이서 음식을 먹을 기회가 줄어듭니다. 그냥저냥 한 끼를 때운다는 식의 습관이 듭니다. 그러니 음식 맛이 점점 떨어지고 심지어 식사를 건너뛰게까지 됩니다. 식사의 즐거움이 사라집니다. 삶의 의욕과 건강을 동시에 잃게 됩니다. 명절이나 집안 잔치 때에 나이든 어르신네께서 평소와 달리 밥을 더 드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그분들이‘사회적 입맛’을 잠시 찾았다는 뜻입니다. 보고 싶은 형제자매나 자식들, 손자손녀들과 함께 어울리니 저절로 입맛을 찾은 것입니다. 며칠이 가도 입에서 군내나도록 꾹 다물고 지내다가 오랜만에 수다도 떨게 되고, 귀는 이 소식 저 소식도 듣게 됩니다. 눈도 한껏 성장하고 나타난 식구들 덕분에 찬란한 호강을 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오감이 살아나게 됩니다. 먹지 않아도 배불러집니다. 우리 사회는 아쉽게도 사회적 입맛에 소홀한 문화입니다. 식사 시간에 입에 음식을 물고 말을 하면 어른께 야단을 맞았습니다. 식탁에서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서로 피하기 급급했습니다. 정겨운 대화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오로지 밥과 반찬에 눈과 귀를 고정하고 허겁지겁 먹기에 바빴습니다. 누가 빠른 시간에 음식을 쑤셔 넣는지 경쟁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와 달리 예수님께서는 ‘사회적 입맛’을 중요하게 여기신 분이셨습니다. 누가 식사에 초대해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참석하셨고, 아주 즐겁고 화기애애하게 좌중을 이끄셨습니다. 많은 사건이 식탁 주위에서 벌어졌습니다. 성만찬 제정, 자캐오를 위한 잔치, 세리 마태오와 식사, 옥합을 깨고 향유를 부은 사건, 바리사이 시몬의 집,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 등등 다양합니다. 이런 점 탓에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로부터 지적을 당하고 먹보요 술꾼이라는 오해를 받으셨습니다. 아울러 식탁예절에 대한 비유가 많습니다. 식사에 초대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하셨고, 율법학자들은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사회적 입맛은 단순히 음식 맛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눈과 손과 코와 귀와 입이 아우러져 잔치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야 제대로 된 사회적 입맛을 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탁월하게 사회적 입맛을 내신 분이십니다. 대화도 낯빛도 좌중을 이끄시는 지혜도 탁월하셨습니다. 질문과 답을 통해 참석한 이들이 골고루 대화에 참여하게 하셨으며 우정과 사랑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마태8,11)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잔치가 벌어지는 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입니다. 그런 자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입맛을 잃지 않고 좌중에서 오감을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음식 먹기에 급급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며 식탁 공동체를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나도 남도 건강하고 즐겁게 삶을 영위하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이제 한가위 명절이 돌아옵니다. 온 가족이 모여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처럼 사회적 입맛을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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