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 둘째 아들 자랑 좀 할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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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수복 | 작성일2009-10-01 | 조회수430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내 둘째 아들 자랑 좀 할께요>
내 나이 우리 나이로 예순 여섯이니까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세월을 계산하면서 들어주면 좋겠다. 우리 할머니는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북동 성당에서 매일미사 다니고 기도 열심히 하기로 유명한 분이셨다. 그분이 작은 며느리를 예뻐하고 큰 며느리인 우리 어머니는 미워하고 그 때문인지 나도 별로 예뻐하신 기억이 없다. 그런 할머니가 당신 신앙은 작은 어머니가 아니라 우리 어머니에게 물려주셨다. 우리 어머니도 할머니를 닮아 기도와 남모르는 봉사활동에 온 마음과 온 몸을 바치셨다. 그래선지 나는 신학교를 다니고 서울 대신학교 6년을 수료했다. 그러고도 신부는 되지 못했다. 그런 우리 어머니도, 당신 시어머니 전철을 밟아, 작은 며느리를 예뻐하고 큰 며느리인 내 마누라를 탐탁찮게 여기셨다. 그러면서도 믿음은 작은 며느리가 아니라 큰 며느리인 내 마누라한테 물려주셨다(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 돌보는 일에 열심이었던 어머니는 암 선고를 받고 수술하면 2년 쯤 더 살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일곱 자녀의 간청을 물리치고 일체 병원을 가지 않고 약도 들지 않은 채 석달 만에 별세하셨다). 시집올 때 신자가 아니었던 내 마누라도 내 어머니를 닮아 기도선수, 봉사선수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아들 둘을 모두 신부 만들려는 포부를 품었다. 큰 아들은 서강대학 종교학과까지 보냈지만 신부 만들기를 실패했다(큰 아들은 결혼해서 아들을 낳고 두 달 있으면 둘째 아들이 태어난다. 나는 큰 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리라 기대를 걸고 있다). 둘째 아들은 신학교까지 보냈다가 실패했다. 그 둘째 아들이 교육대학을 나와 초등학교 선생이 되었다. 이 둘째 아들이 비록 신부는 되지 못했을망정 1년에 적어도 한 명씩 지진아, 무시당하거나 따돌림 당하는 아이 한 명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을 했다 한다. 엊그제 나에게 하는 말이 이번에 자기 반에서 반 년 동안 학급 친구들이 못살게 굴던 아이 한 명에게 모두 잘못 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하고 친해졌다 한다. 그 아이도 해방되고 친구들도 사람이 된 셈이라 했다. 내 아들이 신부가 되지 못했어도 그만하면 괜찮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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