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묵상과 대화 <다른 사람과 다른 나라에 대한 착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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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수복 | 작성일2009-10-05 | 조회수409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하느님은 다른 사람과 다른 나라를 착취하는 사람과 나라를 증오하십니다>
* 자기는 경건하고 신심이 깊다고 뽐내는 자들은 자기들이 하느님께 많은 제사와 기도를 바치기 때문에 스스로를 모범적인 종교인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들의 가면을 벗기십니다.
“무엇 하러 이 많은 제물들을 나에게 바치느냐? 나 이제 숫양의 번제물에는 물렸고 살진 짐승의 기름기에는 지쳤다. 황소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는 보기도 싫다. 너희가 나를 보러 오는데 도대체 누가 너희에게 내 집 뜰을 짓밟으라고 하더냐?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아라. 이제 제물 타는 냄새에는 구역질이 난다. 초하루와 안식일과 축제의 마감 날에 모여서 하는 헛된 짓을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너희가 지키는 초하루 행사와 축제들이 나는 정말로 싫다. 귀찮다, 이제는 참지 못하겠구나. 두 손 모아 아무리 빌어 보아라. 내가 보지 아니하리라. 빌고 또 빌어 보아라.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손은 피투성이, 몸을 씻어 정결케 하여라. 내 앞에서 악한 행실을 버려라. 깨끗이 악에서 손을 떼어라. 착한 길을 익히고 바른 삶을 찾아라. 억눌린 자를 풀어 주고, 고아의 인권을 찾아 주며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오라, 와서 나와 시비를 가리자.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 1,11-18) “백성들은 크게 놀라 ‘당신께서 보아 주시지 않는데 단식은 무엇 때문에 해야 합니까? 당신께서 알아 주시지 않는데 고행은 무엇 때문에 합니까?’ 하고 여쭙자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기뻐하는 단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러 주고 멍에를 풀어 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 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너희 빛이 새벽동이 트듯 터져나오리라. 너희 상처는 금시 아물어 떳떳한 발걸음으로 전진하는데 야훼의 영광이 너희 뒤를 받쳐 주리라. 그제야, 네가 부르짖으면, 야훼가 대답해 주리라. 살려 달라고 외치면, ‘내가 살려 주마.’ 하리라. 너희 가운데서 멍에를 치운다면, 삿대질을 그만두고 못된 말을 거둔다면,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자에게 나누어 주고 쪼들린 자의 배를 채워 준다면, 너의 빛이 어둠에 떠올라 너희 어둠이 대낮같이 밝아 오리라.”(이사 58,3-10) “이것은 내 말이다. 야곱 가문의 어른들은 들어라. 이스라엘 가문의 지도자들은 들어라. 무엇이 바른 일인지 알아야 할 너희가 도리어 선을 미워하고 악을 따르는구나! 내 겨레의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발라내며, 내 겨레의 살을 뜯는구나.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바수며 고기를 저미어 냄비에 끓이고 살점은 가마솥에 삶아 먹는구나. 그런데도 야훼께서 부르짖는 너희 기도를 들어주실 성싶으냐? 그렇게 못된 짓만 하는데 어찌 외면하시지 않겠느냐?”(미가 3,1-4)
* 이상의 인용문들은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 문장 자체로 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깨닫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이중적인 태도를 보고서 분노를 느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 선택된 백성이라고 여기고 자기네는 장엄한 종교 예식을 거행하기 때문에 거룩한 백성이라고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자기네 소명을 다 하는 일은 소홀히 했습니다. 이와 같은 종교적인 위선이야말로 하느님을 가장 화나시게 만듭니다. 하느님은 당신 백성의 이중적인 태도를 견디시지 못합니다. 즉 종교생활과 사회생활을 떼어놓고 보는 그들의 태도를 견디시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 하느님이 품으신 불만은 우리 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백성은 말로만 나와 가까운 체하고 입술로만 나를 높이는 체하며 그 마음은 나에게서 멀어져만 간다. 그들이 나를 공경한다 하여도 사람들에게서 배운 관습일 따름이다.”(이사 29,13)
묵상과 대화
1. 예언자들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슨 구실을 내세워 자기들이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었습니까? 2. 그들의 생각이 틀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참된 ‘신심’ 이란 무엇입니까? 4. 참된 종교생활이란 기도와 종교예절에만 한정됩니까? 5. 왜 하느님은 종교생활과 사회생활을 떼어놓고 보는 사람들을 증오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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