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5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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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순 | 작성일2009-10-05 | 조회수379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 30주간 월요일]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그때에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인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는 비단 복음 말씀에만 그치지 않고 응급구난을 의무화하는 ‘사마리안 법’으로 강제하는 국가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말씀을 실천하고자 하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므로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인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하신 말씀이 유난히 마음에 와 닫습니다. 고통의 이 언덕에서 영원한 생명이 있는 저 언덕으로 가기 위해서는 강을 건너야 하고 그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뗏목을 이용해야 건너갈 수 있습니다. 그 뗏목이 바로 자비라는 것을 알려주신 말씀이 오늘 복음입니다. 부처님은 강을 건넜으면 뗏목은 버리라고 하셨지만 저희는 아직도 뗏목을 강물에 띄우지도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강을 건너게 해 줄 뗏목조차 아직 만들지 못하고 강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당시의 이점을 안타깝게 생각하시고 뗏목인 복음을 선포하셨지만 예수님의 뜻이 왜곡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종교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 이점을 걱정하시어 오늘 비유를 말씀하신 것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자비의 삶을 실천하지 않고서는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없다는 뜻에서 또한 자비의 삶이 어떤 모습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오늘 복음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에서 묵상하는 점은, 강도를 만나서 초주검이 된 상태로 방치된 사람을 구한 사람은 사제도 아니며, 레위인도 아닌 가장 천대받는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사실과 사제와 레위인을 비유로 등장시킨 점입니다. 사제는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거룩하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레위인은 자손 대대로 오직 성전의 일에만 전념하며 다른 지파로부터 십일조를 받게 하는 등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히 선택받은 지파입니다. 바로 이들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내 몸처럼 섬긴다.' 는 계명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민족의 피가 흐르는 사마리아 인이 오히려 하느님의 참뜻을 바로게 실천하여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복음은 시사하고 있습니다. 자비를 실천함에 있어서는 사제처럼, 레위인처럼 그들이 가진 그런 지식은 필요 없는 것이며 그런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받았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오늘 복음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인 자비를 실천함에 있어서는 그 어떤 지식도 필요가 없는 것이며 그 어떤 사회적, 종교적 지위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를 깨달아야 한다는 뜻으로 오늘 복음에서는 이방인이라고 멸시한 사마리아 사람이 자비를 실천하였다는 사실을 비유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비의 본질은 물과 같음을 묵상한 적이 있습니다. 물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모든 생명에게 생명을 주며,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 나아갈 뿐 결코 높은 곳으로는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 물결은 뒤 물결에 그 자리를 내주며, 서로 앞서 가려고 다투지도 않고, 어떠한 경우가 있어도 영원한 고향인 바다만큼은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은 물처럼 늘 낮은 곳으로 향하며 모든 사람에게 특히 고통 받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높은 지위는 바라지도 않을 것이며 편안한 자리에는 안주할 틈도 없으므로 섬김을 받을 생각조차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신앙이 필요한 것이며 그 외에 자비로 수렴되지 않는 또 다른 우리 신앙의 목적이 있다면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므로 하느님의 뜻도 아닐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하여 자비를 모르는 위선적인 유대교 지도자들을 간접적으로 질타하고 계시므로 지금의 관점에서는 자비의 실천보다는 잘못된 구원관을 심어주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교의 잘못된 가르침을 질타하고 계신 듯합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이 바로 예수님이 계셨던 聖이고, 우리 모두가 예수님이 계셨던 그곳으로 나아가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우리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야 하고 또 얼마나 많은 대가를 더 지불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답답하므로 마침기도로 이런 답답한 마음을 달래며 오늘 묵상을 마치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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