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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삶의 주어(主語)는 ‘내’가 아닌 ‘하느님’이다" - 10.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05 조회수1,302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0.5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요나1,1-2,1.11 루카10,25-37

                                    
 
 
 
 
 
"우리 삶의 주어(主語)는 ‘내’가 아닌 ‘하느님’이다"
 
 


새벽 성무일도 시 새롭게 마음에 와 닿은 구절입니다.

“주께서는 희생보다 자비를, 번제보다 지혜를 원하시나이다.”
자비와 지혜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이를수록 자비롭고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옳은 길은 걷는 이에게는 하느님 구원을 보여주리라.”
옳게 살아야 하느님 구원을 체험합니다.
아무리 재주 좋아도 옳게 살지 못하면
결코 하느님 구원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자비롭고 지혜롭고 겸손하게 살아야 하느님 구원을 체험합니다.
아니 이런 삶 자체가 하느님 구원의 체험입니다.
오늘 1독서를 묵상하는 순간
하느님은 우리 삶의 주어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요나 삶의 주어이신 하느님을
그가 피해 달아날 길 없었듯이
우리 역시 우리 삶의 주어이신 주님을 피해 달아날 길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바다위로 큰 바람을 보내시니,”
“주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주님께서는 그 물고기에게 분부하시어 요나를 육지에 뱉어내게 하셨다.”
주어는 요나가 아닌 하느님이요,
요나나 물고기는 주어이신 하느님께 속한 목적어일 뿐입니다.
 
성경은 물론 우리가 바치는 시편도
온통 하느님이 주어(주인)가 되시어 펼쳐가는 구원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매일 우리가 바치는 성무일도 시편들,
우리 삶의 주어이신
하느님께서 펼치신 업적에 대한 찬미와 감사가 아닙니까?
진정 하느님을 믿는 이들 주어는 내가 아닌 하느님이심을 깨닫습니다.
 
‘내가 농사를 지은 게 아니라 하느님이 농사 지으셨다.’
‘내가 수도원에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수도원에 보내셨다.’
고 고백합니다.
 
진정 이를 깨닫는 것이 겸손이요,
이 주어의 하느님 자리에 내가 들어감이 바로 교만입니다.
 
하느님의 주어 자리에 내가 들어가 있기에
세상이 이토록 혼란하고 무질서한 것입니다.
 
도대체 하느님을 발견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느님이 주어이심을 잊고 도망치다 주님께 사로잡히자
정신이 번쩍 들어 주어이신 하느님을 자각한 요나의 고백입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
  나는 바다와 뭍을 만드신 주, 하늘의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시오.”

이런 당당한 용기의 내적 힘은
순전히 하느님이 내 삶의 주어(주인)임을 믿을 때 나옵니다.
 
요나의 삶의 주어가 하느님이듯이
우리 삶의 주어 역시 하느님이요,
요나가 주님의 섭리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듯이
우리 또한 주님의 섭리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주어이신 하느님의 좋은 협력자가 되고
여기서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체험합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라고 대답한 율법학자에게
주님은 화답하시며 그대로 인정하십니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바로 사랑의 이중계명을 실천하는 길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임을 분명히 확인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부단히 사랑의 이중계명을 실천해 갈 때
비로소 주어이신 하느님의
좋은, 자비롭고 지혜롭고 겸손한 협력자가 됩니다.
 
오늘 복음의 착한 사마리아인
하느님의 좋은 협력자가 되어 자비를 실행합니다.
 
이방인이지만
종교인의 전형인 사제나 레위인 보다 더
하느님께 가까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알게 모르게 하느님의 그 삶의 주어가된 사마리아인입니다.
 
주님은 율법학자 들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의 예를 든 다음
율법학자들에게 묻습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믿느냐?”

율법학자는 물론 복음을 들은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물음입니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즉시 주님의 명령이 되 따릅니다.
 
오늘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삶의 주어이신 주님의 좋은 협력자가 되어
자비행의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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