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7 주간 금요일 - 분열을 부르는 교만
산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서로 멀어집니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오면 내려올수록 서로 가까워지고 그 밑에는 맑은 계곡물도 흐르고 물고기도 삽니다.
서로 높아지려한다면 서로 갈라질 수밖에 없고 분열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치하는 모습은 바로 죽기까지 순종하는 겸손의 모습임을 보이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아버지와 일치를 이루셨습니다.
사탄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을 서로 교만하게 만들어 갈라지게 하는 것이 그의 평생 직무입니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를 교만하게 만들어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고 또 서로서로의 일치도 깨뜨렸습니다.
한 번은 늦은 저녁 시간에 청년들의 회합실로 들어갔습니다. 여름 캠프를 위해 열심히 회합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들어가 앉았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입니다. 가만히 지켜보니 어떤 단체장이 청년회장과 이미 결정된 사항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청년 회장은 그 청년 단체장보다 나이가 많이 어렸습니다. 그러니 청년 회장도 그 단체장에게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부모가 되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런 것에서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됩니다. 부모가 임종 직전에 꼭 하는 말 중에 하나는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저도 제가 맡고 있는 단체가 분열되어 갈라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저렇게 갈라져서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서로 갈라짐이 얼마나 안 좋은 것이지 말씀해 주십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심지어는 마귀들까지도 서로 갈라지지 않습니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마귀가 일치하는 것은 자신들의 공공의 적을 무너뜨리기 위함입니다. 바로 인간을 죄짓게 하여 하느님과 인간을 갈라놓으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들이 잃은 하늘나라의 행복을 얻는 것을 못견뎌하고 그래서 인간을 죄짓게 하여 자신들의 원수인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 많은 단체장을 나무랐습니다. 그 단체장은 저에게 실망을 하였을 테지만 저는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질서 때문에 공동체가 하나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막내라 집에서 항상 부모님께 “그래도 형은 형이야!”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야 가정의 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청년 회장 대신 그 부속된 단체장의 말을 더 들어준다면 청년회가 엉망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공동체가 바로 로마 가톨릭 교회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가장 큰 공동체로 유지되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공동체 안에 질서가 잘 잡혀져있고 그 질서를 존중해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베드로를 우두머리로 하는 사도들, 또 72제자 등으로 질서 잡힌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단 둘이 있어도 둘 사이에 질서가 있어야 하나가 될 수 있지 서로 자신이 높다고 주장하면 서로 갈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치의 모델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아들보다 더 큰 분이실까요? 만약 아버지가 더 크신 분이라고 대답했다면 틀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한 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질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와 같아지려고 또 높아지려고 한다면 둘은 한 몸이 될 수 없고 하느님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 앞에서 자꾸 낮아지려고 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을 당신과 똑같이 높여주셔서 서로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분열을 조장하는 사탄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낮아짐’입니다. 높이 있는 물일수록 서로 갈라집니다. 즉, 계곡물은 많은 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조금 낮아져 시냇물이 되면 점점 하나가 되고 또 더 낮아져 강이 되면 더더욱 하나가 됩니다. 물론 가장 낮은 바다로 들어가면 모두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바벨탑의 예를 보면 알 것입니다. 인간의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으로 탑을 높이 쌓았지만 결국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흩어놓아 사람들이 서로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낮아질 수 있는 것이 힘입니다.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교만한 이는 에너지가 없습니다. 작은 것에서 화를 내고 사람을 판단하고 미워하고 그래서 갈라집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은 겸손한 사람은 한없이 낮아지려하기 때문에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해야만 하기 때문에 박해를 받을 때도 있기는 합니다. 그렇더라도 같은 믿음을 지닌 이들과는 절대 갈라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한없이 겸손한 분이셨기 때문에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실 줄 아셨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들어 높이는 것이 더 쉽습니까, 아니면 자신을 낮추는 것이 더 쉽습니까? 자신을 높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자신을 낮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교만을 심어주어 우리들이 속해있는 단체를 분열시키려합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높여 마귀가 원하는 분열을 조장하는 도구가 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마귀를 이기고 교회의 일치를 이루고 가정의 평화를 이루는 길, 바로 나부터 시작되는 겸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