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6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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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순 | 작성일2009-10-09 | 조회수474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 28주간 금요일]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 게 와 있는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15 군중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이 마귀를 쫒아내시고 병든 이를 치유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고 하는 기적 등을 잘못된 문자해석 때문에 그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행사하시기에 예수님만 믿으면 나에게도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고 죽어서 천당에 갈 수 있다는 그런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위안을 받고 있다면 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숭고한 가르침을 배워서 이를 실천하겠다는 사람을 자신의 신앙관과 다르다 하여 비난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올바른 신앙관인지는 알고 있어야 예수님의 죽임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도 보호하지 못하고 불의한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전지전능하셔서 마음대로 기적을 일으키신 분이라면 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였을까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우리의 구원은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까요? 이에 대한 우리 교회의 가르침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파스카의 희생양이 되시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인간들이 죽였는데 '그래! 이제는 너희들의 죄는 다 사하여 졌다'고 칭찬해 주실까요? 오히려 천벌을 내리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이런 대속 구원관은 로마당국이 예수님을 처형하였기에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당시는 로마제국의 황제가 교회의 수장이었기 때문에 대속 교리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로마황제가 교회를 지배하였기에 우리 교리 속에 지배논리가 반영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우리의 구원은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까를 묵상하면 답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세력에게 죽음을 당하였으므로 이런 사실을 기억하여 불의한 세력을 물리쳐서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면 우리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가 바로 예수님께서 그토록 소망하셨던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오늘 복음의 도입부분에서 벙어리 마귀를 쫒아냈다 하였습니다. 이는 입이 있어도 바른 말을 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즉, 불의한 자들을 향하여 불의한 자라고 바른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 아닌 벙어리를 치료하였다는 뜻으로 묵상하지 않을 수 없으며 치유를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자신들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서를 묵상함에 있어서 주의할 점은 묵시문학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서는 실제 사실처럼 기록되어 있지만 대부분 상징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상징성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에게 헛된 망상이나 심어주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이를 충분히 이해할 능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이 성경을 읽는 것은 한편으로는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습니다. 마귀를 쫒아내려면 성령으로 쫒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벙어리 마귀를 쫒아내셨지만 예수님이 떠난 지금은 저희에게 남겨주신 말씀으로, 성령으로 우리 마음 속의 온갖 그릇된 마귀들을 쫒아내야 합니다. 성령은 저희에게 알려주신 진리의 말씀이 곧 성령이 아닐까하는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잊고 있다가 필요한 선택의 순간에 말씀이 떠올라서 바른 선택을 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은총일 것입니다. 오늘 묵상은 두 가지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는 말씀입니다. 부부가 이혼하면 가정이 파탄 나듯이 하나가 둘로 갈라지면 망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안에서 치고받고 싸움질을 할망정 결코 갈라서는 일만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가정생활이 그렇고 모든 조직도 마찬가지이며 특히 이스라엘은 솔로몬이 죽고 나서 남북으로 갈라져서 결국은 양쪽 모두 멸망한 사실은 자신들의 역사이므로 민중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사실입니다. 예수님 당시도 사회는 극도로 불안하였습니다. 로마에 항거하는 혁명당원과 로마제국에 협조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 사이에 긴장이 극도로 고조된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시대의 예언자로서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한다." 는 사실을 선포하시고 계십니다. 지금 이 말씀은 남북으로 분열된 바로 이 땅의 우리 현실이고, 남북이 분열되어 멸망했던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대비하여 이런 불행한 역사가 이 땅에서 재현되지 않도록 오늘 복음을 우리 현실로 받아드린다면 이보다 더 값진 복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 역사도 동, 서방교회로 갈라졌고, 서방교회인 우리 가톨릭에서 또다시 성공회와 개신교가 분리되어 나감으로서 신구교간의 다툼으로 수백만명이 희생되어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서로 관용을 베푸는 길만이 해결책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유럽 지성인들을 중심으로 똘레랑스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하였습니다.중세 유럽의 암흑의 역사는 우리 교회의 잘못 때문에 비롯되었으며 그 중심에는 교회 지도자들의 타락과 교리가 문제였습니다. 이런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평신도들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는 말씀 역시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도 없이 우리 현대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초심을 망각하고 장기집권을 하였던 역대 두 분 대통령의 말로가 이 말씀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목표지점과 방향이 틀어져서 길을 가다보면 가면 갈수록 그 차이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둑이 무너지는 것은 처음에는 물 한 방울씩 떨어지는 미세한 구멍에 불과하지만 방치하면 둑이 무너지는 대형사고로 이어지며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우리 속담도 위 말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가야할 방향으로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지, 우리 교회는 예수님께서 지향했던 목적에 충실한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를 우리 모두가 성찰하는 복음이 되기를 소망하며 또한 매일매일 묵상을 통하여 삶의 교훈을 얻고 제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기에 주님의 은총에 감사드리며 오늘 묵상을 마무리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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