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0월 10일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
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9-10-10 | 조회수603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10월 10일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 루카 11,27-28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더 큰 바다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한 특별한 수녀님이 계십니다. 얼마나 겸손하시고, 온유하신지, 또 소리 없이 많은 일을 거뜬히 해내시는지 신자들로부터 ‘살아있는 성모님’으로 통합니다.
수녀님과 한번 인연을 맺은 신자들은 얼마나 수녀님께 매료되는지, 그리고 존경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수녀님을 한번 만난 많은 사람들은 앞 다투어 수녀님의 팬클럽에 가입합니다. 수녀님의 영성과 정신, 봉사하는 모습이 너무나 마음에 들기에.
그런 수녀님의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인품도 인품이지만, 탁월한 친화력과 중재력이 비결이었습니다.
이 수녀님의 특기는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길 소지가 발생하면 아주 조용히, 지혜롭게, 소리 없이 개입합니다. 그리고 말씀도 크게 하지 않습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조용히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리고 조용히 빠져나가십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없습니다. 수녀님 자신이 본당 굳은 일은 거의 다 뒷전에서 도맡아하십니다. 그리고 뭔가 하나라도 잘 되면, 주임 신부님 덕분이라고, 작은 수녀님이 수고하셨다고, 신자여러분들이 잘 협조해주셨다고 칭찬하고 자신은 조용히 뒤로 물러납니다.
물론 신자들을 향해 거짓말도 많이 하십니다.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신부님들께서 얼마나 신자 여러분들을 많이 생각하고 있고, 자나 깨나 신자들의 영성생활 성장을 위해 노심초사하시고, 오직 신자 여러분들 영혼구원만을 위해 존재하신다고 약간의 ‘뻥’을 칩니다.
그리고 신부님에게도 거짓말을 종종 하십니다. 신자들이 끔찍이도 신부님 생각한다고. 이런 좋은 신자들 처음이라고.
그러니 가시는 본당마다 갈등이나 불화가 생겨날 이유가 없습니다. 평화롭습니다. 늘 화기애애합니다.
한 사람의 그런 희생과 중재, 헌신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수녀님의 그런 모습에 감동한 신부님, 사목위원들, 단체장들도 수녀님을 따라서 겸손하게 봉사하기 시작합니다.
보십시오. 행복의 비결은 헌신이고, 희생이고, 자기낮춤이고, 겸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성모님께서 들으셨을 때 몹시 섭섭해 하셨을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 외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그때 보통 사람이라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적어도 이 정도로 대답하지 않겠습니까?
“예, 맞습니다. 저희 어머님 정말 훌륭하신 분입니다. 저의 오늘날이 있기까지 묵묵히 많은 수고를 해 오신 분입니다.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매정하게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참으로 성모님께서 들으셨다면 섭섭해 하실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 말씀의 배경에는 보다 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나는 이제 인류구원이란 더 큰 바다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혈육과 가정과 부모와 고향을 떠나갑니다. 우리 어머님, 생각하면 제대로 한번 챙겨드리지 못해 늘 안쓰럽고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신 사명을 생각하면, 제가 더 이상 나자렛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쉽지만 눈물을 머금고 이제 어머님을 떠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지상과제인 인류전체의 구원을 위해 미련 없이 더 큰 세상을 향해 떠나갑니다.”
이런 예수님의 출가 선언 앞에 성모님 역시 아쉽지만 예수님을 떠나보냅니다. 10달 동안이나 자신의 배속에 들어있었던 예수님, 낳고 키우느라 죽을 고생을 다했기에 애착이 가지 않은 수 없는 예수님이지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생각하며 미련 없이 떠나보냅니다. 여기에 성모님의 위대성이 있습니다.
마리아의 위대한 Fiat(예!,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 앞에 참으로 큰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물론 저도 가끔은 기쁘게 “예!”라고 응답합니다.
“생맥주 한잔하러 가자”는 형제들의 초대 앞에 저는 만사를 제쳐두고 기쁘게 일어섭니다. 뿐만 아니라 “손맛 좀 보러가자”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설레는 마음을 겨우 가라앉히며 낚시도구 챙깁니다.
이런 Fiat은 진정한 Fiat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남들이 다하는 Fiat이니까요. 진정한 Fiat은 바로 성모님의 Fiat입니다. 고통스러운 길, 정말 가기 싫은 가시밭길이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 주님을 위한 길이기에 기꺼이 길 떠나는 Fiat이야말로 진정한 Fiat입니다.
다가오는 삶의 모든 국면들이나 사건들, 사람들을 거부하지 않고 관대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기꺼이 직면하는 자세가 진정한 Fiat의 자세입니다. 정말 이해하지 못할 일, 억울하기 그지없는 사건들 앞에서도 나대지 않고 조용히 마음에 간직하며 그 안에서 하느님의 의도를 파악하는 자세야말로 참 Fiat의 자세입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평생에 걸친 노력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응답하십니다. 이제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성전, 새로운 성도(聖都) 예루살렘이 됩니다. 이제 마리아는 그 안에 메시아가 끊임없이 살아 계시는 계약의 궤가 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