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께서 받으신 유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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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수복 | 작성일2009-10-13 | 조회수39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예수께서 받으신 유혹>
* 당신 사도적 생활을 시작하신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면 형제자매의 사랑이 넘치는 인간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여러 모로 생각하셔야 했습니다. 예수께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 방법을 놓고 고민하셨습니다.
복음서에서는 악마의 ‘유혹’을 보여 줍니다.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 형제자매의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건설하는 일에 떨쳐 일어나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받으신 유혹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가난한 사람들은 사랑과 정의가 넘치는 사회를 건설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당장 우리가 할 일은 올바른 방법과 길을 찾아 내는 일입니다.
* 예수께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편안한 생활을 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셨습니다.
예수께서도 우리처럼 아무도 알아 주지 않고 무의미하게 보이는 자기희생의 길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셨습니다. 그 때에 악마가 예수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하여 보시오.” 하고 꾀었습니다(루가 4,3). 예수 하나가 가난한 사람이 된다고 해서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 것입니까? 그런 피곤한 길을 택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과연 가난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까? 의식주의 불편함이 없이 편안하게 살면서도 얼마든지 좋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더구나 그런 가난한 생활이 하느님 아들의 품위에 걸맞지 않지 않습니까? 예수의 가까운 친구 베드로까지도 예수께 구태여 감옥에 갇히고 사형을 당하는 어려운 길을 갈 필요가 있느냐고 유혹합니다(마태 16,22).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런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 다만 유혹일 뿐임을 가려 낼 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습니다(마태 16,23). 예수께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루가 4,4).
* 예수께서도 권력을 잡으라는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네 해방을 이루는 길이 자기네 자율과 자치가 아닌 다른 세력의 힘을 빌어 부당한 정치권력을 뒤집어엎는 데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착각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반드시 스스로의 깨침과 단결과 투쟁을 통해서만 진정한 해방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결코 가난한 사람들 자신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악마의 세력 앞에 무릎을 꿇기만 하면, 악마는 세상의 모든 재산과 권력을 예수의 손에 쥐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악마는 예수를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잠깐 사이에 세상의 모든 왕국을 보여 주며 다시 말하였다. ‘저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줄 수 있소. 만일 당신이 내 앞에서 엎드려 절만 하면 모두가 당신의 것이 될 것이오.’”(루가 4,5-6)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시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의 어떤 권력에도 고개를 숙이시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어떤 권력구조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로우셨습니다.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 분만을 섬겨라.”(루가 4,8) 하느님 홀로 형제자매의 사랑을 우리에게 쏟아 부으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 홀로 주님이십니다(마태 23,10). 이스라엘 군중도 빵을 많게 하신 예수의 기적을 보고 예수를 다른 지상의 왕과 같은 왕으로 만들려고 합니다(요한 6,15). 그러나 예수의 왕권 행사는 여느 왕이 하듯 강제력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와 더불어 행사하는 왕권도 그와 같습니다.
* 더욱이 예수께서는 개선주의의 유혹을 느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소박하고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그런 예수께서도 틀림없이 사람들 앞에서 당신 자신을 위대한 분으로서 드러내고 싶은 유혹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고 난 다음 그런 유혹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런 유혹에 떨어지시지 않았습니다. 군중의 환호성도 예수로 하여금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철저하게 겸손해야 함을 잊도록 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악마는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시오. 성서에 ‘하느님이 당신의 천사들을 시켜 너를 지켜 주시리라.’ 하였고 또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손으로 받들게 하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루가 4,9-11). 인간은 모든 영광과 영예를 하느님께 돌려야 합니다.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또는 명성욕에 따라서 살아가거나 행동하는 것은 형제자매인 타인에게 해롭기만 합니다. 예수의 형제들이 예수께 “이 곳을 떠나 유다로 가서 당신이 행하시는 그 훌륭한 일들을 제자들에게 보이십시오. 널리 알려지려면 숨어서 일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훌륭한 일들을 할 바에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권하였습니다. 이렇듯 예수의 형제들조차도 그분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요한 7,3-5). 남에게 드러내거나 자랑하거나 거드름피우거나 영향력을 휘두르기 위해 하는 일은 제아무리 훌륭한 일일지라도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로 섬기고 나누고 사랑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데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는 말씀이 성서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루가 4,12). 하느님만이 만물과 만민의 주인이십니다. 온갖 개선주의는 하느님을 시험하는 짓입니다.
* 예수께서도 두려움에 사로잡힐지 모르는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당신 사명을 수행하는 데 따른 박해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끼고 계셨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께서는 두려움에 휩싸이십니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깨어 있어라.…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하시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르 14,33-36) 그러나 예수께서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기도하는 가운데 얻고 죽기까지 당신 자신을 바칠 수 있는 힘을 얻으십니다. “우리의 사제는 연약한 우리의 사정을 몰라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셨습니다.”(히브 4,15)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네 역사 속에서 겪은 유혹을 이겨 내셨습니다. 우리도 예수의 뒤를 착실히 따르면 온갖 유혹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묵상과 대화
1. 예수께서도 우리처럼 선택해야 할 길을 앞에 두고서 유혹을 느끼셨습니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예수께서 받으신 유혹을 오늘날 우리 가난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받고 있습니까? 3.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난한 사람들에게 맡기신 사명과 그리스도 자신을 배신할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유혹을 이겨 내는 방법을 어떻게 가르치셨습니까?(마태 6,13; 26,41; 1디도 6,9; 히브 3,8; 야곱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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