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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4 조회수552 추천수2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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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하느님을 전심(全心)으로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정비례하는 관계입니다. 아무리 하느님을 잘 섬겨도 이웃 사랑이 없으면 진정한 하느님 사랑도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웃과 나누면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집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은 삶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톨스토이가 이런 말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기적인 자기 사랑은 불행의 시초이고, 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행복의 시초이다.”

교회생활을 잘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교회생활을 가장 잘하는 표시는 바로 사랑입니다. 주님은 그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이 신앙을 평가하실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장차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무엇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그때 하느님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열심히 사랑했습니다!”라는 말밖에 없습니다. 더 늦추지 마십시오. 지금 사랑을 결단하고,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하느님을 사랑할 때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웃을 사랑할 때는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주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본능적으로 사랑합니다. 그렇게 자기를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구체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사랑이란 구체적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감상입니다. 사랑을 감상하지 마십시오. 사랑을 감상하기만 하면 사랑의 능력과 사랑의 축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호주머니를 비우는 사랑이 될 때 진정 축복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하느님 앞에 상급 심판을 받을 때 기준이 무엇입니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그 일 외에 다른 어떤 큰일도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는 큰 일이 아닙니다. 사랑은 성경이 전하는 하느님의 음성의 가장 핵심적 내용이고, 또한 인간 최대의 존재 이유이며, 신자의 가장 기본 행동원리입니다. 그래서 사랑할 때 하느님은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한규님 참조)



[10월 15일] 생명의 말씀 '복음'  
<루카 11,47-54>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오늘의 묵상]
옛 중국의 요순 시대 이야기입니다. 요 임금은 왕위를 ‘허유’라는 사람에게 물려주려 합니다. 하지만 허유는 싫다고 사양하며 도망을 갑니다. 도피하던 그가 어떤 사람의 집에 묵었는데, 집주인은 허유가 자신의 모자를 훔쳐 갈까 봐 감춰 둡니다. 허유는 천하를 마다하고 도망쳐 온 사람인데, 집주인은 모자를 잃을까 봐 방비를 한 것입니다. 허유라는 사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모르면 엉뚱하게 대합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도 예수님을 몰랐기에 독한 앙심을 품습니다. 예수님을 옭아매고 곤경에 빠뜨리려 합니다.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을 율법을 망가뜨리러 오신 분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이 오해가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말씀을 멈추시거나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조용히 당신의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누구나 오해하고 오해를 받습니다. 때로는 억울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앙심과 보복이 떠오른다면 극복해야 합니다. 감정에 휩쓸리면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로 돌아가게 됩니다. 인내와 기도로써 ‘주님의 뜻’을 헤아리려 애쓴다면 ‘예수님을 닮는 행동’이 됩니다. 내 인생을 떠받칠 또 하나의 ‘십자가를 지는 행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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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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