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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돈에 대한 거룩한 욕심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5 조회수614 추천수2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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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돈에 대한 거룩한 욕심


그리스도인들은 물질과 돈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돈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돈의 노예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의 노예가 된다는 것처럼 인생을 불쌍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었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 말은 사람이 돈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돈이 사람을 소유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돈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은 돈을 자기가 소유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상 돈이 그 사람들을 소유한 것입니다. 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격을 팔고, 명예를 팔고, 심지어는 목숨을 내놓기까지 합니까?

마귀가 하느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을 지옥으로 끌어내리는데 가장 성능이 좋은 무기 중의 하나가 바로 돈일 것입니다. 돈으로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기만 하면 보통 사람들은 돈에 슬슬 끌려가기 쉽습니다. 돈 때문에 망한 사람이 그렇게도 많을 것을 잘 알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의 인생임을 알고 자족하는 마음(1티모 6,7 참조)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마음은 성령을 마음에 모신 사람이 누리는 참으로 기막힌 은혜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돈에 대한 욕심을 가져야 한다. 그 욕심을 거룩한 욕심이라고 한다면, 돈에 대한 거룩한 욕심이란 말이 성립되는 말일까요? 성립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돈 자체는 선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돈 자체가 절대적으로 악한 것이라면 돈에 대한 거룩한 욕심이란 개념은 성립이 되지 않겠지만, 돈이 선하게 쓰일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면 돈에 대한 거룩한 욕심을 가진다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돈은 곳곳에서 좋은 일을 하는 첨병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돈으로 인해서 수많은 악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돈은 수많은 분쟁과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돈 때문에 이웃과의 정이 생기기도 하고, 개인의 삶에도 발랄함과 활기를 주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문제는 돈이 어떤 사람의 손에 있느냐 하는 것이며, 또한 돈을 어떻게 지혜롭고 아름답게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돈은 나쁜 역할을 하는 사탄의 도구도 될 수도 있지만 좋은 역할을 하는 하느님의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돈에 대한 거룩한 욕심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좋은 것에 욕심을 가지는 것은 오히려 필요합니다. 죄는 하느님이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을 욕심을 내어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적극적인 의미에서 죄는 하느님이 하라고 명령하신 것에 대해서 욕심을 내지도 않고 팔짱만 끼고 있는 것입니다. 마땅히 욕심을 가져야 할 것을 욕심 내지 않는 것도 일종의 죄라는 말입니다.

돈을 선한 용도로 사용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있다면 마땅히 돈에 대한 거룩한 욕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서도 돈을 화목의 도구로 사용하려고 하는 적극적인 소망을 가지고 돈에 거룩한 욕심을 가지는 삶을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지, 그저 가만히 손을 놓고 있으면서 청빈함을 자랑하는 삶은 결코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아닐 것입니다.


(이한규님 참조)



[10월 16일] 생명의 말씀 '복음'  
<루카 12,1-7>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오늘의 묵상]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말씀 그대로입니다.
우리의 ‘머리카락 숫자’까지 기억하시는 주님이라 했습니다. 그만큼 ‘한 사람 한 사람’을 섬세하게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주님을 우리는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삶이 두렵다면 원인을 찾아봐야 합니다.습관일 수 있습니다. 별다른 이유 없이 ‘불안한 미래’를 연상하는 나쁜 습관입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대비도 아닙니다. 오지 않는 ‘비’를 미리 뛰어가서 맞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이 있습니다. 믿고 맡기는 자세입니다. 머리카락 숫자까지 기억해 주시는 주님께 ‘앞날’을 바치며 사는 것이지요.

물론 쉽지 않습니다. 언제나 유혹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미래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셔야’ 모든 미래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분석하는 것은 여전히 어린이의 신앙입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훈련을 반복해야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좌우하십니다. 한낱 미물인 참새까지도 그분의 계산 아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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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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