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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18 조회수2,722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11월 18일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Well done, good servant!
You have been faithful in this very small matter;
take charge of ten cities.!
(Lk.19.17)

 

나를 드러낸다는 것
(날마다 행복해지는 책중에서)


 1789년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가 이집트의 나일강 어귀에서 파죽지세로 승승장구하던 프랑스 함대와 마주쳤을때의 일입니다. 함상에서 열심히 작전 계획을 브리핑하던 넬슨 제독에게 그의 참모가 그 계획에 감탄하면서 무의식 중에 이렇게 말했답니다


 "각하 만일 우리가 프랑스군을 물리친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어떻게 말할까요?"


 그러자 넬슨 제독은 엄숙한 어조로 그를 꾸짖었다고 합니다


 "이보게 말조심하게! 이 싸움에서 우리가 이긴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돼! 우리 영국은 세계 평화를 위해 싸우는 것일세. 세계 사람들의 평가를 받기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란 말이야."


 오직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세계 평화를 위한 넬슨 제독의 굳건한 의지를 발견할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들은 위의 참모처럼 남의 시선만을 생각할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더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하고, 그러기 위해 다른 사람을 누르고 그 위에 올라서려는 욕심이 생기게 되지요. 하지만 우리는 넬슨 제독이 평화를 위해 싸우려고 했던 것처럼 더 중요한 것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첫마음을 잊어버리는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참모와 같이 우리들도 처음에 가졌던 좋은 마음들을 잊어버리고 나의 실리만을 챙기는데 급급한 것은 아닌지요?

 

 성당에 다니는 한 봉급쟁이가 박봉을 쪼개어 소녀 가장 돕기를 실천했습니다. 매월 5만원씩 꼬박 2년을 보냈지요. 그런데 봉급쟁이의 도움을 받고 있었던 소녀 가장은 마음속 깊이 고마움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감사의 표현을 하는데는 매우 부족했답니다.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답례가 없자 이 봉급쟁이는 소녀 가장을 돕는 것을 중단하고 말았어요. 그리고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불평을 했답니다.


 "이렇게 경우 없는 사람이 있나"


 중요한 것은 어려운 소녀 가장을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실리를 생각하다 보니 첫마음이 없어지고 만 것이지요.
자신을 낮춘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괜히 손해보는 느낌, 이 세상에서 멍청이가 된 듯한 생각, 남들처럼 앞자리에 서고 싶은 마음. 바로 그런 느낌과 생각과 마음으로 인해 욕십을 버리고 겸손한 모습을 취하기란 쉽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욕심을 버리는 순간 얻는 것도 있습니다. 욕심을 버리는 순간, 고난은 사라지고 편안함을 누릴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떤가요? 혹시 세상에 나를 드러내기 위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또한 나의 드러냄이 결국 자신을 망가뜨릴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오랫동안 소홀히 했던 이웃은 없는지요? 만약 있다면 그분께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보내도록 합시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오늘이 될수 있지 않을까요?

 

자연의 법칙
(희망가게중에서)


 옛날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감자를 주식으로 할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자 농사를 지었고, 거둔 감자중에서 큰 감자를 먹고 작은 감자는 다시 씨감자로 썼지요. 이런 식으로 한동안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중에 거두는 감자는 점점 작아져 돌멩이 만해지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아일랜드 농부들은 이 경험을 통해서 소중한 자연의 법칙을 깨닫게 되었다고 해요.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은 쓰고 나머지를 씨앗으로 쓰면 안 되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가장 좋은 것을 씨앗으로 써야 계속해서 자신도 좋은 것을 얻을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수 있었던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들의 삶에서도 이렇지 않았을까요?  자신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을 취하려고 하는 반면, 그보다 못한 것만을 다른 이를 위해서 내 놓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면서도 '조금 주고 많이 받는' 결과를 얻기만을 원하는 것은 절못된 것입니다.


 아주 슬픈 이야기 하나가 생각납니다. 어떤 초등학생이 횡단보도를 무시하고 달려오던 차에 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고를 낸 차는 뺑소니를 쳤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한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는 가던 길을 멈추고 아이를 급히 인근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병원비도 없고 보호자도 없다면서 병원측은 진료를 거부하는 것이에요.
 이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다른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그 병원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고 결국 아이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경찰이 도착했고 그간의 경위와 아이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죽은 아이의 아버지는 의사였고 그는 아이의 진료를 거절했던 첫번째 병원의 의사라고 하네요.
 바로 자신의 눈앞의 이익만을 보다가 결국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을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가슨 아픈 사연이지만 바로 나의 사연도 될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나를 위해서는 좋은 것만을 얻으려고 하면서 남을 위해서는 나쁜 것만을 내어 놓는다면 결국 그 손해가 바로 내 자신에게 돌아올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Desire to stay - Fariborz Lach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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