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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성경으로 공부하는 가톨릭 교리 3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0 조회수908 추천수9 반대(0) 신고
 

 

 

♣ 성경으로 공부하는 가톨릭 교리 ♣

 

 I. 신앙과 결단

 

교리 3: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만약 누군가가 “당신은 신의 존재를 믿습니까? 그러면 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시오.”라고 묻는다면, 저는 “저는 신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러나 증명은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신의 존재를 증명해 낼 수 있다면 더 이상 믿음은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밤에 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가까스로 절벽을 비집고 나온 나뭇가지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힘이 점점 빠졌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늘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저를 구해 주세요.”

“그래, 나를 믿는다면 네가 잡고 있는 나뭇가지를 놓아라.”

 

믿음이란 것이 정확히 이것입니다. 자신을 버리는 결단입니다. 나뭇가지를 놓으면 떨어져 죽을 것 같다면 끝까지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고, 죽든 말든 나뭇가지를 놓는다면 비로소 믿음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신의 존재를 증명을 해보려는 시도가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한 가지만 해 보겠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배워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인간 안에 내재된 능력입니다.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더 아름답고 덜 아름다운 것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 각자 안에 아름다움의 기준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30cm 자를 가지고 연필들의 길이를 재고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내가 지니고 있는 자는 어느 공장에서 찍혀서 나에게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공장엔 계속 똑 같은 치수를 잴 수 있도록 정확한 길이의 기준이 있어야합니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게 찍어내면 안 될 것입니다.

아름다움의 기준도 인간 모두에게 똑 같이 있습니다. 정말 예쁜 사람이나 꽃을 어떤 사람은 못생기거나 추하게 보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누구나가 다 아름답게 보는 이유는 그 안에 같은 아름다움의 기준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그 아름다움의 기준이 저절로 인간이 지니고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습니다. 이것이 모든 신 존재 증명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것도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나에게 아름다움이란 기준을 심어 준 분은 아름다움의 기준 자체, 즉 ‘아름다움 자체’이실 것입니다.

아름다움이 동물이 지니고 있지 않은 능력이기에 고차원적 능력이라고 한다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저절로 진화되어 인간이 가지게 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절로 고차원으로 발전하는 것은 자연법칙에 어긋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사막을 걷다가 정교한 손목시계가 떨어져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누구도, “사막의 모래들이 정교하게 모여서 시계를 만들었네?”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술자가 만든 시계를 누가 차고 다니다가 떨어뜨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시계는 어쨌거나 사막에 있으면 점점 녹슬고 부서져서 결국 모래처럼 되고 맙니다. 무엇이든 정교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 허물어지는 것은 있어도 저절로 정교하게 진화되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생물들이 그렇게 진화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지금 원숭이가 왜 사람으로 진화되고 있지 않은지는 설명을 못합니다. 또 세상에 어떻게 생명체가 생겨나게 되었는지도 증명을 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우리는 둘 다 증명할 수 없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갈래에 서 있는 것입니다. 만약 둘 중의 하나가 온전히 증명 된다면 다른 하나는 믿지 않게 될 것이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 마음 안에, 혹은 세상에 아름다움을 부여하신 아름다움 자체이신 분이 계신다고 믿기 시작한다면 모든 것은 매우 쉬워집니다.

꽃에게 아름다움을 준 누군가가 아름다웠어야 하는 것처럼 세상을 존재하게 한 누군가도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세상이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그 존재를 준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존재자가 없다고 한다면 존재하게 한 누군가가 없다고 해도 되겠지만 엄연히 세상은 존재하고 따라서 존재하게 한 누군가가 반드시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한 창조주 하느님은 존재하십니다. 또한 하느님은 '존재자체'이십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온 우주에 있는 그 많은 아름다움을 주었다면 적어도 그 많은 아름다움을 다 합친 만큼 아름다워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한 사람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있는 그 수많은 아름다움이 다 합쳐진 아름다움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 아름다움은 무한대이고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주신 분을 “아름다움자체”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주 하느님의 본성을 우리는 이렇게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온 우주를 존재하게 하셨기 때문에 “존재자체”이시고, 식물, 동물, 인간에게 생명을 나누어주셨기 때문에 “생명자체”이십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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