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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천상의 왕이 심판 받으시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1 조회수738 추천수7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그리스도 왕 대축일 - 천상의 왕이 심판 받으시다

 

 

 

 이번 주는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간이고 전례적 의미로 보자면 최후의 심판을 의미하는 주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주간이 그리스도 왕 대축일인 것은 최후의 심판 때에 그리스도께서 온 우주의 왕으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세상의 종말이 와서 내가 그리스도 왕께 심판을 받는다면 과연 몇 점을 받을까요? 우리는 먼저 예수님께서 무엇을 기준으로 우리를 심판하실 것인가를 알아야합니다. 예수님은 문제를 다 가르쳐주시고 시험을 보시는 착한 교수님과 같습니다. 문제도 여러 개도 아니고 단 한가지입니다. 그 문제란 이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대학에서 적어도 60점은 넘어야 통과 할 수 있습니다. 그 ‘60점’이란 적어도 미워하는 사람이 없을 때 받는 기본점수이고 모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했다면 100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 25장은 최후의 심판이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지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판 기준은 역시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입니다. 즉, 모든 사람, 특별히 보잘 것 없는 형제들에게 베푼 우리의 사랑으로 심판하시겠다는 내용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이 ‘영과 영혼과 육체’의 삼위일체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삼위일체의 모습대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 중에 인간보다 더 하느님을 닮은 피조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천사들도 시기할 가장 위대한 창조물이 바로 인간인 것입니다.

만약 예전에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비슷한 모습의 사람을 만나면 그 첫 인상이 어떻습니까? 그 사람을 알기도 전에 친근감이 갑니다. 그러나 반대로 미워했던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보면 말도 걸기 싫어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그 모습을 닮은 하느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모습 안에 하느님의 모습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사랑하면 하느님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히 행복한 분이십니다. 인간도 사랑함으로써 그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그 사랑으로 우리가 당신처럼 행복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행복하기를 원해야 합니다. 누가 행복 하고 싶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면 행복하다는 것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미워하면 고통스럽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용서가 잘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불행합니다. 이때는 행복을 위해서 아무리 사랑하려고 발버둥 쳐도 누구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차로 말하자면 연료가 없는 상태입니다. 연료가 없는 차를 아무리 행복을 향하여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럴 때는 연료를 채워야지요. 연료를 채우는 시간을 ‘기도’라고 합니다. 기도 중 가장 큰 기도가 미사입니다. 자동차가 주유소에 가서 연료를 채우듯이 우리들도 사랑이신 하느님께 그 사랑을 받아 우리 마음 안에 채워야 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생명을 주셔서 살아가는 것처럼, 사랑도 받아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 사람마다 기도 안에서 얻어지는 사랑의 양은 다를 수 있습니다. 컴퓨터가 성능이 좋지 않으면 인터넷에 접속했을 때 그림 한 장 뜨는데 하루 종일 걸립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를 오래하더라도 사랑, 기쁨, 평화가 크게 늘어나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항상 힘들고 우울하다면 자신의 기름 탱크를 정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기름 탱크가 오물로 가득 차 있고 혹은 작은 사고로 뚫어져 있다면 아무리 기름을 부어도 헛수고입니다. 모령성체 하는 것이 이런 경우입니다. 먼저 정비공장에 가서 깨끗이 치료를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고해성사가 되겠지요. 그렇게 깨끗한 마음을 지녀야 하느님께서 그 안에 은총을 부어주십니다.

 

기도를 아무리 해도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진정 내가 용서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를 조금만 밟고 있다면 내 차는 당연히 천천히 가게 됩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것은 사랑하려는 나의 의지를 가리킵니다. 아무리 하느님께서 사랑의 연료를 내 안에 넣어주어도 사랑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면 당연히 덜 사랑하게 되는 것이고 덜 사랑하면 덜 용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을 써도 용서가 안 되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도 열심히 하고 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고 가치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알지만 그 사람 모습만 보아도 싫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참 답답한 경우인데 이때는 내 차종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이것입니다. 달란트 비유를 생각해 봅시다. 주인이 종들에게 각자 그 능력에 따라 돈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어떤 종들은 그 돈을 잘 이용하여 몇 배로 불렸지만 어떤 종은 그것을 가만히 묻어놓고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주인은 그 종을 어두운 곳으로 내어 쫓고(그 곳이 지옥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 하나 남은 것마저 많이 번 종에게 줍니다. 마지막 날에 심판이 이렇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시골에서 소를 키울 때 여물을 쑤어서 소에게 줍니다. 그러면 소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여물을 잘도 먹습니다. 아마 소는 날것보다 그렇게 익혀서 주면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익혀먹는 것이 좋다고 하여 짐승들에게 불을 줄 수 있을까요? 그들은 그것을 활용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들이 사람의 수준으로 올라오지 않는 이상엔 그들에게 좋다는 어떤 것도 줄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 본질이 하느님의 은총을 제대로 사용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면 성당에 24시간 앉아있어도 나아지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은총은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갑니다. 나의 본질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진정 자신의 본질을 변화시킨 사람일까요? 바로 인간의 온전한 모델인 그리스도처럼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천상의 왕께서 이 세상의 한 작은 왕에게 심판을 받으십니다. 분명 빌라도도 죽어서는 그리스도 앞에 섰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낮아지는 것이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되셔서 천상의 왕이 되셨습니다.

따라서 나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것이란, 내 자신을 작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비우시고 아버지를 받아들이셨고, 성모님은 자신을 비우시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자신 안에 자신으로 차 있는 만큼 신적인 본질은 우리 안에 흡수 될 수 없습니다.

겸손이 곧 사랑입니다. 교만이 곧 심판입니다. 그래서 어린이처럼 되어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천상의 왕께서도 사람에게 심판을 받으실 정도로 작아지셨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묵상하며 더 겸손하고 사랑 가득한 사람이 되어갈 것을 결심합시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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