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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22일 야곱의 우물- 요한 18,33ㄴ-37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2 조회수494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도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빌라도는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 하고 되물으셨다. “나야 유다인이 아니잖소?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긴 것이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 하고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빌라도가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예수님께서 사형받을 당시 로마의 총독은 빌라도였고 식민지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에서는 유다인들에게 종교 문제나 율법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자치권은 허용했지만 사형집행에 관한 판결은 총독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죽이기 위해 법적 최종집행자인 빌라도에게 끌고 간 것입니다. 로마 법정의 재판통념상 범죄자들한테는 십자가형의 벌을 선고해 왔기에 빌라도는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예수의 대한 재판을 거절하려 했습니다. 빌라도의 솔직한 심정은 예수라는 이 젊은이에 대해 재판하기를 꺼려했고 단죄하는 일에도 가담하기 싫어했습니다. 그 이유는 온갖 수모와 배척을 당하는 일이 그의 범죄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유다인들의 시기에 기인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마태 27, 18)

빌라도는 첫 심문에서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요한 18, 33) 하고 물었습니다. 빌라도는 왜 예수님을 향해 이 같은 심문을 시도한 것일까요? 그것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빌라도에게 고소한 내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루카 23, 1–2) 빌라도가 정말로 예수님을 유다인의 왕으로 여기거나 유다인의 왕 행세를 한 것으로 믿고 이 같은 심문을 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빌라도가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냐고 물은 것은 예수님한테서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지 듣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실상 예수님이 로마 정부에 대한 정치적 반역 행위를 했느냐는 물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의 질문에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요한 18, 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나라와 이 세상 나라를 구분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본질적으로 세상과 전혀 다른 차원에 속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마태 6, 10) 우리에겐 두 개의 나라만 존재하는데 하나는 하느님 나라이고, 또 하나는 이 세상 나라입니다. 그 사이에 우리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에 속하든지, 아니면 이 세상 나라에 속하든지 둘 중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나라의 개념은 일정한 영토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에 의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회집단으로서 국민·영토·주권의 세 가지 요소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속해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주권 아래 그분의 백성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백성으로서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영토를 확장시켜야 합니다. 이 세상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나라에 속해 있는데 그들은 사탄의 지배 아래 있고, 사탄의 자녀로 사탄을 위해 그 영토를 확장시킵니다.

하느님 나라는 사랑 위에 세워졌지만 세상 나라는 욕심 위에 세워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모퉁이의 머릿돌”(마태 21, 42)이 되셨습니다. 이 기초위에 하느님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주권 아래 있고 하느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데, 그 통치법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십자가에서 드러내셨습니다. 우리의 법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요한 13, 34)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법’ 아래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 백성으로서 사랑의 법을 어떻게 지키고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로 약속된 유다인의 왕이십니다. 유다인들이 생각한 메시아는 이 세상에 속한 왕국의 왕이었지만, 이 같은 생각은 잘못된 메시아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는 인류의 죄를 지시고 “고난을 받으실 메시아”(이사 42, 1–9),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온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메시아”(요한 3, 15), 백성을 “영원토록 다스리실 메시아”(묵시 22, 5)가 참 메시아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죄로 더러워진 이 세상의 정권을 잡고 왕이 되실 분이 아니십니다. 이 세상은 예수님의 심판으로 멸망받을 땅인데 예수님이 이런 세상적인 땅 위에서 왕 노릇 할 것이란 생각은 큰 오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에 속한 왕이십니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요한 18, 37)라고 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가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진리가 무엇이오?”(요한 18, 38)라고 물었고 이 해답을 얻지 못했으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판결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중에 세상을 심판하시는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묵시 19, 11–16) 우리는 하느님 나라가 임하시기를 기다리면서 하느님 나라의 통치법인 ‘사랑의 법’을 잘 실천할 수 있도록 주님의 은혜를 청하며 살아가야겠습니다.
정애경 수녀(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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