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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성체 : 나의 소유가 되신 예수님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2 조회수516 추천수3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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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영성체 : 나의 소유가 되신 예수님


영성체 때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나에게 주시고 나의 소유가 되신다. 그의 몸, 피, 영혼 그리고 신성(神性) 모두 나의 소유가 되신다
. 하루는 성녀 젬마 갈가니가 예수님께 꾸밈없는 단순함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저는 당신의 주인입니다."

영성체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나의 마음 안에 들어오시며 면병의 외형이 지속되는 한 신체적으로 내 안에 머물러 계신다.  그 기간은 대략 15분일 것이다.  교부(敎父)들은 그 기간 동안 천사들이 나의 주위를 에워싸고 예수님께 흠숭과 사랑 드리기를 그치지 않는다라고 가르쳤다.
성 벨라도는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신체적으로 계실 때 천사들이 사랑의 호위병으로서 우리 주위를 둘러싼다
."라고 기록하였다.


내 안에 계시는 그분, 그분 안에 있는 나

아마도 우리들은 매번의 영성체의 숭고함에 대하여 너무나 소홀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성 비오 10세 교황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천사들이 부러워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들은우리가 성체 받아모시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다." 
성녀 마들레느 소피 바라(St. Madeleine Sophie Barat)는 영성체를 "지상에서의 천국"이라고 정의(定義)하였다.

모든 성인들이 우리가 성체의 예수님과 만나고 일치됨의 신성한 경이로움에 대해서 자신들의 경험을 통하여 이해하였다.  그분들은 열심한 영성체가 그분께 소유되고 그분을 소유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요한 6,56). 
한 번은 성녀 젬마 갈가니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지금은 밤입니다.  내일 아침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저를 소유하실 것이며, 제가 예수님을 소유할 것입니다." 
영성체보다도 더 깊고 더 완전한 사랑의 일치가 있을 수 없다. 그분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분 안에 있게 된다.  우리가 무엇을 더 원할 수 있겠는가?

성 요한 크리소스톰이 말하기를, "여러분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여인을 부러워하시겠지요.  그리고 눈물로써 그분의 발을 씻겨드렸던 죄많은 여인과, 그분의 여행길에 수반하면서 도와드렸던 갈릴리의 여인들, 그분과 친밀히 대화할 수 있었던 사도들과 제자들, 그분의 입술로부터 솟아나오는 은총과 구원의 말씀들을 들을 수 있었던 그 당시의 사람들을 부러워하시겠지요.  여러분들은 그분을 실제로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하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러나 제대에로 오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영성체로써 그분을 느낄 수 있으며, 그분께 거룩한 친구(親口)를 할 수 있으며, 그분을 여러분의 눈물로써 씻어드릴 수 있으며, 가장 거룩하신 마리아께서 하셨던 것처럼 여러분도 그분을 여러분 안에 모시고 다닐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인들은 뜨거운 사랑으로써 영성체를 원하였고 그리워하였다.  예를 들면,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성 파스칼 바빌론, 성녀 베로니카, 성 제랄드, 성녀 말가리타 마리아 알라콕, 성 도미니끄 사비오, 성녀 젬마 갈가니.... 더 계속하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왜냐 하면 모든 성인들의 이름을 다 열거해야 하겠기 때문이다.

하루는 제노아의 성녀 카타리나가 그 다음날 영성체를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꿈에서 알게 되었다.  그녀의 슬픔이 어찌나 컸던지 그녀는 계속해서 울었다.  아침에 잠이 깼을 때 그녀의 얼굴은 꿈을 꾸면서 흘렸던 눈물로 완전히 젖어있었다.

예수 영해 테레사 성녀는 성체에 관하여 "감실 앞에서의 원의(願意)들" 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지었다.
"나는 성작이 되어서 그 안의 성혈을 흠숭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매일 아침 미사 성제에서 그분을 내 안에 모실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영혼은 예수님께 더욱 가깝게 되며 금으로 만든 그릇들보다도 더 귀하게 됩니다."  그리고 전염병이 돌고 있을 때 매일의 영성체가 그녀에게 허락되었을 때 천사와 같았던 그 성녀의 기쁨은 얼마나 컸던가!


태양이 없는 하루

한 번은 어느 고해 신부가 성녀 젬마 갈가니의 영성체를 금지함으로써 그녀를 테스트하였다.  성녀는 영적 지도 신부에게 편지를 썼다.
"오 신부님, 신부님, 오늘 저는 고해 성사를 보았는데, 신부님께서는 제가 예수님을 모시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 저의 신부님, 저는 손이 너무 떨려서 더 쓸 수가 없습니다.  저는 울고 있을 뿐입니다." 
오 불쌍한 성녀!  참으로 성체의 예수님께 대한 대천사처럼 불타는 사랑이었다.

천사와 같은 젊은이였던 알도 마르코치(Aldo Marcozzi)에게는 영성체가 없는 하루는 태양이 없는 하루였다.  추운 겨울 아침에 그의 어머니가 따뜻한 음식을 먹고 학교에 가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성체를 모실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한 시간이 아니라, 자정부터 공심재를 지켜야 했다.)  그 거룩한 젊은이는 자기 어머니께 다음과 같이 슬프게 말씀드렸다. "어머니, 제가 영성체를 하지 못하도록 하시면 하느님께 해명하셔야 됩니다." 
또 한 번은 한 친구가 그에게 안색이 안 좋은데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알도는 대답하기를, "오늘은 나에게는 좋지 않은 날이야.  예수님을 모실 수가 없었으니까."라고 하였다.

한 번은 성 제랄드 마옐라가 중상(中傷)을 당했는데 그는 자신을 변호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영성체가 금지되는 벌이 내려졌다.  이로 인한 성인의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하루는 방문온 사제가 드리는 미사에 참례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그 이유는 사제의 손에 들려계시는 예수님을 볼 때 그 성체를 사제의 손으로부터 낚아채려고 하는 유혹을 이길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훌륭한 성인이 얼마나 성체에 대한 그리움으로 불타고 있었던가!  그리고 매일 쉽게 그리고 뜨거움 없이 영성체에 임하는 우리들에 대한 견책이 아닌가!  그것은 가장 본질적인 것, 즉 사랑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세상의 쾌락들에 너무 애착되어서 성체의 예수님과 일치됨에 대한 천상적 기쁨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성 필립은 육체와 춤과 오락들의 쾌락에 빠져있던 한 젊은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나의 아들아, 감실로부터 풍겨나오는 천국의 향기를 네가 어떻게 느낄 수 있겠느냐?
성체로부터의 기쁨과 감각적인 만족은 "서로 상치(相馳)되는 것이다" (갈라티아 5,17).  그리고 "육체적인 감각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靈)에 속하는 것들을 감지하지 못한다" (1코린토 2,14).  즉, 그런 사람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알지 못한다.

성 필립 네리는 성체를 너무나 사랑해서 심지어는 그가 심하게 아파누웠을 때에도 매일 성체를 영하였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일찍 예수님이 그에게 모셔오지 않으면, 그는 매우 기분이 상했고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예수님 모시기를 너무나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평온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금세기에 와서 삐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가 미사드리기 위하여 새벽 4시나 5시까지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순명에 의한 것이었다.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은 "맹렬한 불"(민수기 4,24)이다.


예수님은 나를 모든 이들에게 일치시키신다

예수님께서 나의 것이 되시면, 교회 전체, 즉 천국과 연옥과 지상의 교회가 기쁨으로 용약하게 된다.  성체가 잘 모셔질 때마다 천사들과 성인들이 느끼는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피조물이 예수님과 거룩하게 일치되어 그분을 소유하고 그분께 소유될 때마다, 천국에는 새로운 사랑의 물결이 흘러들어가며, 복된 영혼들에게는 새로운 기쁨이 주어진다.  영성체는 탈혼이나 환희나 환시보다도 훨씬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영성체는 천국의 전체를 나의 초라한 마음 안으로 모셔오는 것이다
.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영성체는 그들이 우리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귀중한 개인적인 선물이 된다.  영성체가 그들이 풀려나는 데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누가 표현할 수 있으랴?
  하루는 빠찌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세상을 떠난 그녀의 아버지가 나타나서 그가 연옥을 떠나기 위해서는 107번의 영성체가 필요하다고 알려주었다.  성녀가 107번째의 영성체를 아버지를 위해서 했을 때 아버지가 천국으로 올라가시는 것을 보았다.

성 보나벤뚜라는 스스로 이 진리에 관한 사도가 되어서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오 크리스챤 영혼들이여, 당신에게 가까운 죽은 이들에 대한 당신의 참 사랑을 증명하고 싶으십니까?  여러분들은 그들에게 가장 고귀한 도움과 천국에의 금으로 된 열쇠를 보내주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영혼들의 평안을 위하여 자주 영성체를 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영성체로써 우리가 예수님께만 일치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의 모든 지체들, 특히 예수님께 가장 가까운 영혼들 및 우리의 마음에 가장 사랑스런 영혼들과 일치된다라고 하는 데에 대하여 묵상하자. 성 바오로 사도는 "빵이 하나인 것처럼, 우리는 많으나 하나인 빵을 함께 먹는 우리는 한 몸을 이룹니다." (1코린토10,17) 라고 했다.  "내가 그들 안에 있는 것은......그들이 일치 안에서 완전하게 되게 하기 위함이나이다" (요한 17,23)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완전히 실현되는 것은 영성체에 의해서이다.

성체 성사는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  영성체는 "예수님 안에서 모두가 하나"라고 하는 성 바오로의 말씀처럼 그분의 지체인 우리들 사이에 일치를 이룬다.  영성체는 참으로 하느님과의 그리고 이웃과의 순결한 사랑이다.
그것은 성녀 젬마 갈가니가 말했듯이 진정한 "사랑의 축제"이다. 그리고 이 "사랑의 축제"에서 사랑하는 영혼은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기쁨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하늘이 나의 것이며 땅이 나의 것이로다.  사람들이 나의 것이며, 의인들이 나의 것이며, 죄인들이 나의 것이로다.  천사들이 나의 것이며, 천주의 모친 또한 나의 것이니, 모든 것이 나의 것이로다. 하느님 당신께서 나의 것이며 나를 위하는 분이시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나의 것이며 온통 나를 위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로다."

(성체 성사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




[11월 23일, 월요일] 생명의 말씀 '복음'  
<루카 21,1-4>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묵상]
헌금은 정성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헌금함 앞에 섰는지요? 의무가 아니라 기쁨으로 바치는 헌금이어야 합니다. 복음의 가르침은 여기에 있습니다. 가난한 과부는 ‘렙톤 두 닢’을 봉헌합니다.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바칩니다. 하루를 ‘기쁨으로’ 희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정성에 감격해하십니다.

렙톤은 그리스 화폐 가운데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두 닢’의 헌금이라면 주목받을 액수가 아닙니다. 하지만 가난한 여인의 ‘마음’을 읽으셨기에 주님께서는 칭찬하십니다. 그녀의 소박한 믿음을 제자들에게 알리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물질이 부족한 것만 가난이 아닙니다. 시간이 부족한 것도 가난이고, 마음이 바쁜 것도 가난입니다. 일상에 떠밀려 허겁지겁 살고 있다면, 물질이 넘쳐도 부자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주님께 바치는 시간도 주일 미사가 거의 전부입니다. 그 시간에 무엇을 바치고 있는지요? 한 주간 살아온 삶을 바쳐야 합니다.

좋은 일이건 ‘궂은일이건’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며 ‘다시’ 받아들여야 합니다. 봉헌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며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그분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헌금을 보고 계십니다. 한 주간의 ‘아픔’도 헌금 속에 함께 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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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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