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헛되이 살지 말아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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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대 | 작성일2009-11-29 | 조회수487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25-28, 34-36) 대림 시기는 너무나 짧다. 그리스도의 현존을 느끼려면 먼저 그분의 부재를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누구를 기다린다는 것은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조바심을 많이 내는 이유의 여러 가지 물질문명 때문이다. 그러나 성탄절까지 4 주간을 기다려야 한다. 컴퓨터는 은행, 회계, 판매, 생산과 같은 많은 일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따라서 신속한 업무처리에 익숙해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의 처리속도는 무조건 빨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키보드에서 자료를 입력하고 결과를 화면에 내어 놓는데 걸리는 시간을 응답시간(response time)이라고 하며 인간의 뇌 사이클은 대충 0.5초 정도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자료를 입력하고 난 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다른 데에 신경을 쓰게 되어 비생산적이 된다. 그러나 게임을 하지 않는 일반 사용자에게는 그렇게 빠른 속도가 필요 없다. 그 빠른 컴퓨터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과 같은 속도의 세계는 온통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결국 시간을 헛되이 쓰려고 서둘며 시간을 절약한 꼴이다. 우리는 시간이 돈이라고 한다. 시간은 무엇인가? 시간은 바로 우리 자신이고 우리의 생명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루카 17:33)
그렇다면 시간을 아끼고 난 후 헛되이 쓰기 위하여 생명을 보존하고 있는가?
우리 모두 서둘면서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 생명을 오래 보존하려는 것은 일종의 욕심이며 더 많은 경험을 해보려고 하는 것도 욕심이다. 과거와 현재는 실패했더라도 미래는 우리를 충족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빨리 달려가기만 하면 충족시켜줄 기회를 놓치기 일쑤다. 우리는 과거에도 그렇게 서둘면서 달려왔기 때문에 현재를 망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기다리는데 서툴게 되었다.
오늘날 자살이 그렇게 많아도 그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어떤 학자는 기다릴 줄을 몰라서 자살한다고 말한다. 옛날에는 열심히 일하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때에는 패스트 푸드가 없었다.
기다림의 시기인 대림절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런데 우리는 기다림보다는 조급함 속에서 살고 있다. 오늘날같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누구나가 바쁘게 살아가는 분주한 상황 속에서는 기다림이란 매우 낯설고 불편한 것일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기다리는 것을 손해 본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것이 비생산적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으로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그만큼 조급해졌고, 그만큼 정신적인 여유 없이 각박하게 살고 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다고는 하나 급속히 변화해가는 세상에 빨리 적응하고자 하니 자신에 대한 반성과 숙고가 점점 더 부족해지고 있다. 심지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가운데 어디론가 가야 하는 강박관념 속에서 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세상은 매우 역동적으로 보이나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무의미한 삶의 반복인 듯이 보인다. 분주한 가운데 기다림을 허락하지 않는 우리는 마치도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공허함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이렇게 우리는 기다림 없이 바쁘고 급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심리적인 배경에는 강박관념 즉 스트레스가 자리 잡고 있다.
스트레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이다.
우리 모두 기껏 바쁘게 행동하여 벌어놓은 시간을 스트레스에 넘겨주고 있다.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아닐 때에는 또 다시 새로운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골치 아픈 스트레스를 잊기 위하여 현실도피를 하려고 한다. 이렇게 하여 혼돈 속에 빠져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받으시고 난 후 제비 뽑기를 하여 예수님의 옷을 가져간 로마 병사들처럼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수가 많다.
또 우리는 살면서 생긴 여러 가지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고 피하는데 급급하다.
고통은 받아 들여야지 피하려고 하면 또 새로운 스트레스가 된다. 고통은 무섭게 짖으면서 달려드는 개와 같아서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사람을 물어 버린다.
그러나 기다림은 우리를 멈추게 한다. 그리고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게 하며 나아가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길을 살피게 한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도록 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선하시고 바르시니 죄인들에게 길을 가르쳐 주신다. 가련한 이들이 올바른 길을 걷게 하시고 가련한 이들에게 당신 길을 가르치신다.”(시편 25:8-9)
길은 소통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지금 우리들이 주의를 기울여야 할 길은 내면의 길이다. 오늘날의 사회는 물질만능주의에 빠지고 너무나 많은 정보 때문에 혼돈을 겪고 있으므로 영성을 잃어버린 것 같다.
대림 시기는 기다리면서 영성을 되찾기 위하여 묵상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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