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펌 - (91) 친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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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순의 | 작성일2009-12-04 | 조회수561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6778 작성일 2004-04-01 오후 11:00:03
2004년4월1일 사순 제5주간 목요일 ㅡ창세기17.3-9;요한8,51-59ㅡ (91)친구 이순의 ㅡ인연ㅡ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옷깃만 스치는 인연일지라도 엄청난 확률로 맺어진다고 한다. 땅 위에 바늘 하나를 곧게 세워두고 비행기를 타고 3000미터 상공에서 겨자씨 한 알을 떨어뜨려 그 겨자씨가 땅의 바늘에 꽂혀 서로 만나는 관계라고 한다. 땅 위의 바늘 끄트 머리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 한 알이 만난다고 생각해 보면 그 생각 자체만으로도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런 귀한 관계 안에서 의인도 만나고 악연도 겪으며 살 게 되어 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나는 타고나지 못한 건강으로 결석이 잦았었다. 그래서 교무실 칠판에는 우리 반만 늘 결석생 한 명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내가 학교에 간 날에도 그 결석생은 지워지지 않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몰래 교무실로 가서 확인을 하고 우리 반에 결석생이 없다는 표시로 칠판을 지우곤 했었다. 사춘기 소 녀 적에 나는 그렇게 앓다가 아무렇게나 글을 쓰다가 세월이 갔다.
아들이 그 때의 내 나이가 되어 다행히 나를 닮지 않고 아빠를 닮아 건강하게 고등학교 에 입학을 했다. 작년 봄 어느 날에 아들의 반 자모모임에 참석을 했다. "저어~~ 고향이 어디세요?" 라고 시작된 만남이 있었다. "저기 전라도인데요."라는 대답이 있었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반장이 먼저 나를 알아 본 것이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 나의 모습은 가꾸지 않은 탓인지 철이 없는 탓인지 크게 변하지 않았나보다. 그러나 말라깽이인데다 달팽이(도수 높은)안경을 썼던 반장은 토실한 건 강미에 압축으로 팍 줄여서 쓴 안경 탓으로 세월을 뒷걸음질 처 전혀 알아 볼 수가 없었 다. "어떻게 지금이 더 고3 같고 그때가 더 40대 같은데 세월을 거꾸로 살았니?"
여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아들의 반 학부모 총회에 나타나 친구는 나를 알아보고 나는 친구를 알아보지 못 한 것이다. 건강이 온전치 못 했으므로 나는 대학 진학을 미리 포기한 상태였고 친구는 학교에서 알아주는 수재였다. 극과극의 주인공이 만난 것이다. 서로 아들의 엄마가 되 어서!
다행히 친구는 나의 어두웠던 학창시절을 기억해 내지 못 했다. 아마 공부를 너무 열심 히 하느라고 신경 쓸 여력이 없었나 보다. 그 반대로 나는 지금의 저렇게 토실하고 예쁜 친구가 아닌 말라깽이 빼빼인 도수 높은 안경의 우등생 반장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 나 만남은 결석 장이와 우등생이 아니라 세월을 훌쩍 건너버린 자식을 둔 어미의 동질성 으로 이루어 졌다. 내가 어떻게 살고 어떤 모습이건, 친구가 어떻게 살고 어떤 모습이건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순수를 머금은 소녀시절에 같은 교실에서 도시락을 까먹으며 함께 살았다는 깨끗함이 우리를 더 반갑고 소중하게 해 주었다. 작년 한 해 동안 한 달에 한 번씩의 모임이 나에 게 색다른 만족이었다면 친구가 있어서 더 배가 되었을 것이다. 아들들은 2학년이 되어 서 문과와 이과로 진로를 달리하고 반 편성도 다르게 배정 받았다. 그러나 엄마들은 서 로 정다운 모임을 유지하고 싶어 했다.
아들들이 2학년이 되고 나는 계속 그 모임에 참여 할 것인지를 망설이지 않은 것은 아니 다. 강남의 명문 중에서도 역사 이래 이 나라의 인재가 아들의 학교를 거치지 않은 분이 드문 만큼 자부심이 대단한 학교의 어머니들이다. 세상이라는 것이 집에만 갇혀 있으면 보이지 않던 것들도 콧바람을 쐬어 보면 좀 많은 것들이 눈을 부릅뜨고 질주하고 있지 않던가?! 지나온 인생사 내 뜻이 아니다 라고 주님의 뜻이라고 확신한 심성에 분수 넘 는 인생사를 욕심부릴까봐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오늘이 모임이었다. 애써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친구를 보고 싶었다. 모임이 아니라면 서로 바 쁜 일상으로 일부러는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흔쾌히 마음먹고 나갔다. 별다른 얘기를 하 지 않아도 별다른 관심이 없어도 그냥 그대로 반가운, 양 갈래 딴머리를 늘어뜨린 소녀 적 반 친구! 바늘과 겨자씨 보다 더 확실한 인연이었으므로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모임에 가서야 더 큰 이유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승용차로 이동하는 교외 길목에는 개나리가 만개를 하고, 백목련이며 산수유까지 흐릿 한 마지막 겨울풍경을 깨우는 전령들로 종소리가 우렁찼기 때문이다. 칩거 중이라도 손 을 다치지 않았다면 지금쯤 궁궐이라도 다녀왔을 법 한데, 완전히 갇혀 지내느라고 철이 오시는지도 모르고 그냥 가시게 내버려둘 뻔했다. 봄의 한기가 세찼던 탓인지 이른 꽃 님 산수유부터 줄을 서서 차례로 오시지 않고 꽃들은 바쁘게 바쁘게 서로서로 앞서고 계셨다.
40대 입시생 엄마들의 빤한 화재 속에서도 꽃이 있어서 좋은 봄날이었다. 그 꽃을 보았으므로 외출이 보배로울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진한 인연의 연결고리를 걸고 그렇게 웃다가 그렇게 떠들다가 그렇게 걱정하다가! 입시를 목전에 둔 침묵의 동질성은 굳이 털어놓지 않았어도 서로 헤아려 읽을 수 있음에 소중한 만남이 아니던가!
여고 동창생 우리 반 반장을 보고 싶어서 나선 모임에 모두가 자식을 가진 엄마의 모습 으로 친구가 되어 있었다. 다음에도 또 그렇게 걱정하다가 그렇게 떠들다가 그렇게 웃다 가 그렇게 맛있게 먹으며! 굳이 털어놓지 않은 침묵으로도 서로에게 동감임을 수용할 수 있음에 우리는 친구라고 진한 우정의 인연을 이어갈 것이다. 신이 우리에게 아들을 주셔서 귀한 만남으로 허락해 주신 한나절의 반가움에 행복이 흐른다.
우리를 향해 아낌없이 손을 흔들어 준 개나리와 목련꽃, 그리고 산수유 꽃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참! 먼데 산배미 양지 밭에 한그루 하얀 꽃님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저랑 눈이 마주치셨지요? 꽃님?! 그런데요, 매화이신가요? 배꽃이신가요? 아니면 복사꽃이신가요? 먼데서 보아도 참 고 우시데요.(^-^)"
ㅡ"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요한8.58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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