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자! 영혼의 배 채울 양식을 ★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대림 제2주일 루카 3, 1~6 : 세례자 요한의 설교
세상길을 걸었는가?
교회 전례력으로는 새해를 지내고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떡국을 먹고 한 살을 먹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같이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이어령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3000종 이상의 언어가 있다고 하지만 나이를 밥처럼
‘먹는 다’고 하는 민족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 같다.
음식이나 시간만이 아니다. 마음도 먹는다고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한국인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돈도 떼어먹고, 욕도 얻어먹고,
때로는 챔피언도 먹는다. 심리적으로는 겁을 먹고 애를 먹는다.”
아마도 어려웠던 시절에 잘 먹지를 못해서 모든 말을 먹는 것에 연결
시켰는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옛 아침 인사도 ‘아침 먹었느냐?’
엿 습니다.
그래서인지 먹는 이야기와 먹는 것에 대한 TV 방송도 그렇게 많은 것
같습니다.
도대체 TV 방송에 출연하지 않은 음식점이 없을 정도로 길에 즐비합니다.
어느 방송국에 방영 되었다는 현수막을 수없이 걸어놓은 나라도 아마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때문에 먹는 것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까다롭기 까지 합니다. 오늘은 어디에서 회식을 할까? 등으로 참 많이도
고민합니다.
육신의 배는 채워도 영혼의 배를 채우는 데에는 그렇게 느리고 무관심
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늘 세상길을 걷는데 익숙하였고, 그 길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당신의 길을 걷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루카 3,4)
내 영혼의 배가 채워지지 않았는데 어찌 영혼과 육신의 주관자이신 주님의
길이 보일 것이며, 그분의 길을 곧게 할 수 있겠습니까? 유한의 생을 살아
가는 우리들의 삶이 지상에서 서러운 날들이 더 많을 텐데 영원의 삶을 꿈
꾸지 않고 그 많은 슬픔을 어찌 보상 받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을 수 있는 길은 세상길이 아니라, 먼저 주님의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길은 끊임없는 영적인 양식을 채워야
걸을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법입니다.
거지 구유
프랑스 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집 없는 사람들의 대부이며, 현시대의 참된
목자이신 아베 피에르 신부님(1912~)은 당신 생애의 황혼기를 맞으며
지나온 삶을 회상하시며 이 같은 글을 쓰셨습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나는 세 가지 절대적 필요를 느낀다.
내가 받은 것 가운데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나의 내면적 삶에 물을 대어
준 세 가지 샘이다. 성경을 통해 유일하며 정의롭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믿게 해준 유다 민족이 그 첫째 샘이요,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언제나
우리 가운데 모습을 드러내 보이신다는 확신을 내게 심어준 교회가 그
둘째요, 누구보다 고통 받는 자들과 함께 살며 예수님을 긴밀하게 접할
수 있게 해준 곳, 엠마우스가 그 셋째이다.
내가 이처럼 오래 살아오면서 아무리 진정으로 사랑과 진리를 추구하며
살고자 노력했다 할지라도, 어찌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겠는가? 그 반대로 어찌 나 또한 잔인한 공격을 받은 적이 없었
겠는가? 생애 마지막 날에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우리가
용서하듯 우리를 용서 하소서’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루카 3,5~6)
그렇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통해 너무도 좋으신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분 때문에 온갖 시련과 눈물 가운데서도 또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
와 힘을 얻었습니다. 이제 그 소중함을 가지고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 일은 오늘 복음 말씀의 일들입니다.
반목과 미움과 폭력으로 얼룩진 지난 일들, 그 깊은 골짜기를 메우고 교만
과 자존심의 산과 언덕들을 낮추는 일, 그리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파이고
잘려나간 거친 마음의 길을 평탄하게 만들어 진정 가슴 속에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의 기도를 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같은 평화의 길을 걷는 것이 주님의 길을 걷는 것
입니다.
그 길 위에서 만날 수 있는 분이 오시는 아기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분께서 손짓 하시며 우리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의 오늘 말씀으로 용기를 주십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필리 1,6)..........◆
☆ [말씀자료 : 배광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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