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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 7일 월요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07 조회수985 추천수16 반대(0) 신고
 
         12월 7일 월요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 루카 5,17-26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평범함의 은총, 평범함의 행복>


   꼼짝 없이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있었던 적이 있습니까? 벌써 꽤 오래 전 일이네요. 저를 검진하신 의사 선생님께서 ‘큰 일 났다’며 즉시 입원시켰습니다. 그리고 ‘절대안정’이란 팻말을 제 침대 머리맡에 붙여놓았습니다.


   조금만 움직이려 하면 어느새 간호사 선생님들이 달려와서 혼냈습니다. 멀쩡하게 잘 돌아다니다가 꼼짝 없이 갇힌 신세가 되니 정말 기가 차지도 않았습니다.


   제 발로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 평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언젠가 갇혀 있던 한 형제가 큰 외과수술을 받게 되어 외부 병원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도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일이 얼마나 복잡하던지 깜짝 놀랐습니다. 수감자 본인에게나, 따라붙은 사람들에게나 서로가 얼마나 부담스런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화장실 갈 때도 교도관들께서 따라붙어야 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겠지요. 나중에 큰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사람들의 호기심에 찬 시선들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평범한 삶을 산다는 것, 누군가로부터 제약받지 않고 자유롭다는 것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산다는 것, 누군가로부터 도움 받지 않고 내 힘으로 산다는 것,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정녕 큰 은총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중풍병자의 삶은 참으로 기구한 것이었습니다.


   ‘평상에 누인 채로’란 표현을 통해서 중풍이 이미 많이 진전되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발병된 후, 한번 나아보겠다고 백방으로 노력해봤지만,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이제 병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저 이 악몽 같은 삶이 언제 끝나나, 민폐 끼치기가 죽기보다 싫은데, 도대체 언제까지 이토록 구차한 삶을 살아야 하나,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하며 한탄하는 것이 그의 하루 일과였습니다.


   그러던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한 가지 희소식이 전해집니다. 예수님이란 분이 이 마을, 저 마을 전도를 다니는데, 그의 능력이 신통해서 죽어가는 사람들도 낫게 한다는 소식입니다.


   우선 기뻤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병자를 그곳까지 어떻게 옮겨가는가 하는 과제가 큰 고민거리로 대두되었습니다.


   병세가 어지간하면 누군가가 교대로 부축을 하면서 힘겹게나마 걸어서 갈 수 있을텐데, 병이 워낙 깊어질 대로 깊어져서 도무지 방법이 없었습니다. 휠체어도, 자가용도, 구급차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참으로 곤란했습니다.


   가족들은 고민 끝에 아이디어를 하나 고안해냈습니다. 병자를 옮겨가기 위해 간이침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무막대를 달았습니다. 들것을 만들어서 환자 눕혔습니다. 축구시합 때 부상당한 선수들을 라인 밖으로 옮겨갈 때 사용하는 들것 모양이었습니다. 가족들은 교대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병자를 예수님이 계신 집 앞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도착해보니 더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예수님이 머무시는 집 앞에서는 치유를 받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대전 엑스포 입장할 때 줄 섰던 것 보다 더 긴 줄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줄서서 기다리다가는 적어도 이박삼일은 기다려야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안 그래도 기력이 쇠한 병자에게 치명적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편법이지만 한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지붕으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지붕을 통해 병자를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방으로 내려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기상천외한 일, 해도 해도 너무한 일, 도무지 예의가 아닌 일, 화가 나는 일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가족들의 병자를 향한 극진한 마음을 눈여겨보십니다.


   가족들의 병자를 향한 ‘팀플레이’를 높이 평가하십니다. 끝까지 병자를 포기하지 않은 가족들의 지극정성 앞에 탄복하십니다. 치유를 향한 그들의 적극성, 구원받고자하는 그들의 능동성, 한번 사람답게 살아보겠다는 간절하고도 열렬한 마음 앞에 예수님의 마음 또한 움직입니다.


   오늘 제 안에 들어있는 중풍병자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고칠 수 없는 심각한 마음의 질병을 바라봅니다. 제 힘으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형제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번 새 삶을 살아보겠다는 본인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의 자비, 연민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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