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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309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07 조회수408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26

하루는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갈릴래아와 유다의 모든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도 앉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힘으로 병을 고쳐 주기도 하셨다. 그때에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들여다 놓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를 안으로 들일 길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내고, 평상에 누인 그 환자를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에 걸린 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그러자 그는 그들 앞에서 즉시 일어나, 자기가 누워 있던 것을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아가지만 마음이 아프면 마땅히 찾아갈 곳이 없습니다. 아마 이럴 때에 우리 그리스도교인은 교회를 찾아가고 불자들은 산사를 찾아갈 것입니다.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은 한적한 곳을 찾아가 자연을 벗 삼으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의 공통점은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도 우리 자신을 치유하기 위한 여러 행위중의 하나입니다. 지금 우리는 온전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한사람도 없으며 어딘가는 병이 들었어도 병이 들어있습니다. 내가 병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치유 받을 수 있지만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치료받을 길마저도 자기 스스로 봉쇄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하신 말씀처럼 먼저 우리는 어떤 상태로든 병이 들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육신의 병은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병든 영혼은 발견하기도 쉽지 않으므로 성경 말씀과 내 삶을 비교하며 자가진단을 꾸준히 하여 병든 영혼을 치유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참 신앙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중풍을 걸린 이를 치유한 장면으로 사람들이 많아서 환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갈 수 없기 때문에 지붕의 기와를 벗겨 내어 예수님 앞에 환자를 내려놓았습니다. 환자를 예수님 앞에만 내려놓으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적극적인 행동을 하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지붕에 올라가서 기와를 벗겨 내는 적극적인 행동이 바로 "청 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 하신 기도의 바른 모습일 것입니다.

또한 남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생각하였기 때문에 자기 일이 아님에도 중풍 환자가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이런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런 이웃들의 모습을 보며 남이야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고 내 자신만을 생각하는 잘못 등을 성찰하는 복음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새롭게 묵상하는 것은 중풍에 걸린 환자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수님께 치료받기 위해서 여려 난관이 있었음에도 이를 극복하고 기어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중풍에 걸려서 걸을 수 없음에도 평상에 누인 채 예수님을 찾아왔고, 사람들이 많아서 평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 갈 수 없자 지붕을 뚫고 예수님께 다가간 사실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찾아가는 길은 숱한 난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런 난관을 극복하지 못하면 저희들의 병든 영혼을 치유해 주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성사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삶을 살기위해서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진리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는 무수히 많은 난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라면 우리 모두는 성인성녀가 될 것입니다.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과 만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런 고민이라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치유 받을 희망이라도 있지만 진리의 삶과는 거리가 먼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율법이란 새장에 갇혀서 진리의 세상은 생각조차 않고 있으므로 새장에서 벗어나면 당장 죽을 것으로 생각하여 새장을 망가뜨린다고 진리이신 예수님께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자신을 속박하는 창살을 자신을 보호하는 창살로 생각하고 있듯이 우리의 생각과 삶도 이런 모습이 허다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치유하신 기적을 아직도 육신의 병을 치유하신 것으로 믿고 있는 사람은 이제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병든 영혼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진리의 삶 외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곧 진리의 삶을 뜻하고 있으며 진리이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치료받지 못할 그 어떤 영혼의 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환자는 깨끗이 치료받고 건강한 영혼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므로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에서 '사람아' 하고 부르신 것은 獸性의 삶에서 진리의 삶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다는 뜻이 담겨있는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의 이런 의아한 생각이 오늘 묵상에서는 또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가 도둑질을 하여 주인에게 잡혀서 철창에 갇혀야 하는데 제 죄를 기꺼이 용서해 준다면 그분이 바로 제게는 하느님입니다.

이처럼 죄를 용서해 주신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도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해준다면 바로 저희가 그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될 수 있으며, 불우한 이웃을 우리의 노력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으면 그 분들에게는 저희가 하느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해서 진리의 삶을 살고자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우리 신앙의 마지막 목적지입니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직전에 게쎄마니 동산에서 당신을 위해서, 제자들을 위해서, 또 저희를 위해서 기도하시며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요한 17,11; 17,22) 하였습니다. 이 기도 말씀을 묵상하면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은 하나가 되었으므로 저희들도 하느님과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병든 중풍환자를 치유해 주셨음에도 우리는 그보다는 몇 배나 쉬운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누구도 죄를 용서하면 하느님이 될 수 있으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함을 끝으로 오늘 묵상을 마치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을 영접하려 가는 길은 많은 난관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오나 굳건한 믿음으로 그 어떤 난관도 뚫고 가야함을 알려주셨습니다.
굳건한 믿음과 실천으로 진리이신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만이 구원받을 수 있으며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면 주님과 하나 될 수 있음도 알려주셨습니다.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주님의 길을 따라가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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