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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7일 야곱의 우물- 요한 10,11-16 묵상/ 일어나 가라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07 조회수487 추천수4 반대(0) 신고
일어나 가라

하루는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갈릴래아와 유다의 모든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도 앉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힘으로 병을 고쳐주기도 하셨다. 그때에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들여다 놓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를 안으로 들일 길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내고, 평상에 누인 그 환자를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 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에 걸린 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그러자 그는 그들 앞에서 즉시 일어나 자기가 누워 있던 것을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간혹 신자들이 찾아와 고해성사를 보는 것이 무척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왜 그러는지 물으면 신부님께 죄를 고백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꼭 이렇게 해야 하는가 ?’ 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단다. 고해성사는 우리의 부족함이나 죄를 고백하고 그에 합당한 보속을 함으로써 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보속을 담보로 용서해 주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를 하느님과 함께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죄)을 하느님께서 치워주시고 다시 하느님과 함께 살 수 있게 해주는 은총의 선물이 바로 고해성사다. 그러한 하느님의 마음을 읽기보다 단순히 자신의 죄만 생각하기에 고해성사가 어려운 것이 아닐까 ?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알지 못하기에 그 사랑의 성사인 고해성사가 억지로 해야 하는 의무로 다가오는 것은 아닌가 싶다. 오늘 복음에서도 치유를 받고자 하는 이들은 지붕까지 올라가 기와를 벗겨내고 예수님 앞에 중풍 걸린 이를 내려놓는다.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우리도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더불어 예수님께서는 죄의 용서뿐 아니라 “일어나 집으로 가라.” 는 말씀을 하신다. 함께하는 가족 품으로, 그래서 하느님께서 주신 행복한 삶의 자리로 돌려보내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용서하심은 우리를 다시금 행복의 자리로 돌려보내시는 사랑의 행위다.
강헌철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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