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발발 초기 국가 공권력이 전국 각지에서 비무장 민간인 수천명을 불법적으로 집단 학살한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이른바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 대통령 소속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지난 3년간 이 사건을 조사한 결과 ‘이름이 확인된’ 피해자만 4934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보도연맹으로 학살된 피해자는 전국에 걸쳐 20만명은 넘을 것으로 추정돼 추가 실태조사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진화위 김동춘 상임위원으로부터 조사 내용을 들어보았다.
- 어떻게 조사했나.
직권조사라지만 진화위에 신청을 낸 2500여 명의 피해 가족을 중심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명단과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만 4934명이 나온 것이다. 신청인을 조사한 뒤 희생자와 희생 장소, 가해자와 가해 사실관계 등을 모두 조사했다. 하지만 전체 희생자 규모와 최종 명령권자를 못 밝힌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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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향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김동춘 상임위원 |
- 희생자들은 어떤 사람이고, 가해자는 누군가.
이승만 정부가 1949년 과거 좌익활동 경험자의 전향과 교화를 목적으로 조직한 30만명 규모의 반공 관변단체가 보도연맹이다. 연맹원 중에는 정부 비판적인 인사 등 과거 좌익과 무관한 국민도 다수 들어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발발 직후 한강 이남의 전국 114개 읍·면·동 지역에서 군인과 경찰에 의해 보도연맹원 집단학살이 자행됐다. 충남, 대전 대덕, 경북 경산 등에서는 최소 1000명 이상이 각각 학살됐고, 충북 청주, 충남 서산, 부산 등 500명 이상 학살된 지역만도 18곳이었다. 그 외 어지간한 군 단위 지역도 100명 안팎이 학살됐다.
- 학살 지휘 책임자는 누구였나.
학살을 주도한 기관은 경찰 사찰과와 정보수사과, 그리고 육군본부 정보국 CIC(방첩대)로 밝혀졌다. 당시 CIC 책임자가 장도영이었는데 그는 현재 미국에 살고 있어 수차례 조사를 시도했으나 기피했다. 그래서 최고위 책임자는 밝혀내지 못했다. 1950년 6월29일경 국무회의에서 예비검속자를 처리하고 후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증언과 현장 가해자들의 상부지시 증언으로 보아 이 정도 사건이면 최고위층에서 결정하지 않았겠나 추정된다.
- 앞으로 처리 방향은?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불법 집단학살에 대해 국가가 공식 사과하고 관련 기록을 정정할 것과 적절한 배·보상법을 제정하는 등 피해 국민과 화해하도록 정부에 권고했다. 이런 정책 건의에 대해 정부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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